내게는 네명의 손주들과 세명의 손녀들이 있다. 다섯살 짜리 손녀 데니엘이 지난주에 프리 스쿨을 졸업했고, 열네살 짜리 사만타도 지난주 목요일에 중학교를 졸업했다. 데니는 지 엄마보다 할머니인 나를 더 많이 닮은 것 같다. 사실 한국인의 피는 25%밖에 되지 않는 애가 왜 더 동양인처럼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우유빛 같은 피부만 빼고는 길고 쏙 들어간 옴팍 눈과 새카만 눈이 내가 어릴 때 찍은 사진의 모습과 비슷하다. 성격도 제 주장이 강하고 적극적이고 운동 신경도 남다른데가 있어서 벌써 트레인 바퀴가 없는 자전거를 쌩쌩 잘 탄다. 그애 졸업식에는 이십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노래와 춤도 선보이고 흰 사각모를 쓴 앙징스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느듯 칠십년 전인 내 유치원 졸업식을 상기했다.
내가 다섯살이던 그 무렵 인천에는 아사히 유치원이라는 일본 유치원이 있었는데 내가 유일한 한국애였다. 처음에는 일본말을 잘 못했지만 졸업 즈음에는 일본말을 아주 유창하게 할 수 있어서 툭하면 나를 조센징이라고 놀리던 일본애들을 혼내주곤 했다. 그 시절 나이 많은 아버지는 늘 내 손을 잡고 긴 돌담길을 돌아 나를 데리고 유치원을 가시곤 했다.
나는 어느날부터인가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다니시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아마 어떤 일본 애가 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날 부터인가 보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듣고 슬퍼졌다. 아버지가 다른 애들 아버지보다 늙었다는 것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해 여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우리 사위도 오십세니까 다른 애들 아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셈이다. 사위인 스티브는 요가도 열심히 하고 화장품도 딸 것을 슬쩍슬쩍 써서 인지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아마 거의 열살이나 차이가 나는 제 아내를 의식해서인가 보다. 데니의 졸업식 그 다음날이 사만타의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딸애 부부, 그리고 남편과 나, 막내인 쟈니와 며느리인 써니도 참석했다.
사만타는 열네살이 되면서 갑자기 신체적인 변화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제는 키도 거의 제 엄마를 따라 잡게 되었고, 가슴과 엉덩이 선도 여성스럽게 변하면서 제법 숙녀티가 난다. 까만 줄무늬가 있는 하얀 드레스에다 약간 굽이 있는 빨간 신과 가볍게 화장까지 해서인지 그애는 성숙해 보였다.
그애는 데니와는 정반대로 완전히 백인 미녀다. 유난히 크고 부드러운 갈색 눈과 유연한 콧날과 예쁜 입을 가졌다. 그애는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났고, 갓난쟁이때 부터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애를 구경하곤 했다. 어쩌면 이렇게 인형 같이 생겼을까! 하면서 사람들은 감탄하곤 했다. 이웃집 안경집 아저씨는 백만불짜리 눈이라고 칭찬으로 입이 말랐다.
사백여명의 졸업생들 이름을 부르고 나니까 거의 졸업식은 두시간이나 걸렸다. 끝나자마자 곧 댄스 파티가 있어서 사만타는 사진 몇장을 찍자마자 곧 자리를 떠났다. 갑자기 내 기억은 딸애가 그애를 낳았던 십사년 전의 여름으로 돌아갔다. 유난히 덥던 여름 유월의 마지막 날에 그애는 서울의 차병원에서 태어났다. 까만 머리의 애기들 중 연한 갈색 머리의 외국인 애는 그애가 유일했다. 이름표에도 외국인 애기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떠나던 날 딸애는 그때 겨우 한달쯤 된 아기를 안고 베란다에서 떠나는 나를 바라보는데 그 눈이 너무 슬퍼 보여 내 가슴은 찢기듯 아팠다. 그날 나는 그애의 결혼 생활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중에 딸애는 그날 자신도 나를 따라 미국으로 오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딸애는 일년 반만에 한살반짜리 사만타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나타났다. 일년 동안 딸과 사만타는 우리와 함께 덴빌 집에서 살았다. 스티브를 만나기까지 약 반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젊은 시절 두 아이와 함께 힘겹게 살아갈 때 현재의 내 남편을 만났듯이, 그래서 미국이라는 신천지로 와서 아이들을 데려왔듯이, 내 딸도 스티브를 만나서 새롭게 재혼도 하고 두 아이도 더 낳아서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당신 오늘 너무 예쁘군!’ 스티브가 딸애를 보며 속삭인다. 예전 결혼 전에 딸애는 사만타를 맡길 때가 없어서 그애를 데리고 다니며 스티브와 데이트를 했다고 고백했다. 어느땐 사만타가 너무 떼를 쓰고 속을 상하게 해서 다시는 스티브가 연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졸업식장을 나오다가 나는 스티브를 안아주면서 ‘너무 고마워! 우리 사만타를 잘 키워줘서…’ 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솟구쳤다. 미소를 짓는 그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내 남편이 지난 세월 우리 아들들을 잘 키워준 것처럼, 스티브도 사만타를 잘 키워서 앞으로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졸업 시켜서 어느날 그애가 아름다운 신부가 될 때까지 그 옆에서 지켜줄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때는 다섯살쟁이였고, 열네살의 소녀였지만, 세월은 야속하게 우리를 어른으로, 할머니로 변하게 했다. 아주 눈깜짝할 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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