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시간은 달력이나 시계로 재어지는 시간, 직선적인(linear) 시간, 쏜살같이 흘러가는,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에서 희미하게 잊혀지는 시간이다.
일곱 살 때 몇월 몇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할 수 없다. 이 망각의 시간, 유한한 삶의 시간, 잃어버리는시간을, 금강석처럼 빛나며 영원히 썩지않는 시간으로 만들어보려는 것이 모든 예술 활동의 근본이다.
고전 작가들은 시간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박제된 상태의 ‘정형’(canon)을 추구함으로써 영원성을 구현했다. 현대 작가들은 오히려 가장 찰나적인 감각적 환기(evocation)에 힘입어, 잊혀진 기억이 갑자기 마술적인 힘으로 소생되는 순간을 통해서 영원의 지경에 도달한다. 이를 심미적으로 탐구한 대표적 작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이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매우 잘 알려진 대목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화자인 ‘나’는 추운 어느 겨울날, 따끈한 차에 적신 마들렌느 과자 한 조각을 먹다가 갑자기 예기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 따끈한 한 모금의 차가 마들렌느 과자 조각과 섞인 채 처음 입속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알 수 없는 떨림이 온몸을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어디서 생겨나온 것인지 알 수 없고, 아무것과 관계없는 어떤 절묘한 즐거움의 느낌 같은 것이 모든 감각을 침범해오는 것" 같은 센세이션에 휩싸인다. 일순간, 주인공은 하찮고 우발적이며 유한한 일상적 자아에서 벗어나, 알 수 없는 충만한 사랑의 느낌에 휩싸이며 굉장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난 듯한 행복한 감정에 싸이게 된다.
이 희한한 느낌은 ‘차의 향기와 마들렌느의 맛에 연결되어 있지만, 또한 이 맛과 향기를 무한히 초월하는, 어디서 왔는지, 그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붙잡을 수 있는지 모를’ 충만감이며 감각에서 촉발되었지만 감각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영원과 연결된 듯한 지경이다. 이는 일화적인(episodic) 시간성과 대조되는 초시간성(atemporality)의 경험이다.
주인공은 결국 이 기쁨의 정체가, 잊고 있었던 꽁브래에서의 유년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가 라임 향이 나는 차에 적셔 주곤 하던 마들렌느의 맛에서 왔다는 것을 하나의 발현(revelation)처럼 찾아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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