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석에 다리 낀 소녀 등 50여명
갈비뼈 골절에도 불구 ‘전두지휘’
부서진 비행기 내부에는 피를 흘리며 “도와 달라”는 비명소리와 “살려달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난 6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SFO)에서 아시아나 항공기가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꼬리 부분이 활주로가 시작하는 지점 앞 방파제에 충돌했고 이 사고로 2명이 사망하는 등 18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 항공기에 탑승한 프랑스계 벤 레비(Ben Levy,39)씨가 없었다면 사상자는 더 많았을지 모른다는 게 당시 내부에 있던 승객들의 증언이다.
이번 사고에서 50여명의 탈출을 도운 프랑스계 레비씨는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결코 영웅이 아니고 두 아들을 둔 평범한 아버지이자 사랑하는 아내를 둔 남편”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레비씨는 “그 곳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는 ‘BootstrapLabs’라는 실리콘밸리 기반의 벤처 캐피털 공동 대표로, 한국인 아내와 5살, 2살 난 두 아들을 둔 가장이다.
한국 스타트업 벤처 기업을 발굴 지원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같은 사고를 겪게 됐다. 당시 그는 탈출을 돕는 비상구 옆 창가 좌석(30K)에 앉아 있었고 착륙 전 이상증후를 느꼈다고 말했다.
레비씨는 “비행기가 너무 낮은 고도로 활주로에 접근하고 있었다”며 “이러다 ‘물에 떨어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항공기가 기수를 올리려는지 엔진 소리가 크게 들려 안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상승하려던 비행기의 꼬리부분이 활주로에 충돌했고, 내려앉으면서 그 충격으로 비행기 안에는 승객들의 비명소리로 가득했다. 비행기는 순간 뒤집어 지려다 중심을 잡았고 활주로를 미끄러지다 멈춰섰다.
레비씨는 “비행기가 확실히 멈췄는지 몰라 한동안 기내에는 정적이 흘렀다”며 “수초 후 비행기가 멈춘 걸 안 다친 승객들의 고통에 찬 비명과 두려움이 섞인 소리들이 기내에 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일어나 창문을 통해 옆을 보니 물에 추락한 게 아니어서 안심을 했다”며 “사고 직후 어떻게 하라는 기내 방송이 없었고 모두가 당황해 우왕좌왕 하는 상황이어서 누군가는 나서서 탈출을 유도해야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능적으로 비상탈출구를 열려고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이 도와줘 생각보다 문이 쉽게 열렸다며 당시 옆자리에 두 명의 한인 남성이 있었지만 한 명은 머리에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레비씨는 사람들을 향해 “밀지 말고, 가방은 그대로 놓은 채 빠져나가라”고 소리를 치며 승객들의 질서 유지와 비상구에 서서 탈출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는 오른쪽에 2개만 밖으로 펼쳐져 있을 뿐 비행기 왼쪽 편에는 슬라이드가 나와 있지 않았다”면서 “다행히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간 큰 파편이 탈출구 밑에 있어서 그걸 징검다리 삼아 승객들이 땅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며 급박했던 상황을 말했다.
레비씨는 자신도 갈비뼈 골절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전두지휘하며 승객들의 안전을 챙겼다.
이같이 긴박한 상황에서 부서진 의자에 다리가 끼여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16~17세로 보이는 여학생을 발견해 한 승객과 함께 의자를 젖히고 소녀를 구해내기도 했다.
또 산타클라라에서 치과병원을 운영하는 나경란 치과의사의 13살 된 딸 수영양도 레비씨가 손을 잡아 당겨줘서 사고 비행기에서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본보(7월9일자 A1면)에 전한 바 있다.
그는 비행기 뒤 부분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탑승했기 때문에 사상자가 컸을 것으로 본다며 뒤는 자신이 승객의 탈출을 도왔고 앞에서는 한 용감한 승무원(이윤혜 캐빈 매니저로 추정)이 마지막까지 남아 승객들의 안전을 챙기는 모습을 봤다고 설명했다.
레비씨는 “그 승무원이 나를 향해 앞쪽 슬라이드로 탈출하라고 말했다”며 “거의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갔을 때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멀리서 비행기를 바라보며 “방금 일어나 일들이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면서 그제야 두려움과 함께 가족들에게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형 사고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인명피해가 적었던 데는 신속하고 질서 있게 탈출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사고 당시 연기나 불길이 치솟지 않았고 모두 탈출 한 직후 연기와 불이 타올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병원으로 옮겨진 레비씨는 심장박동이 빨라 약을 투여 받기도 했으며 현재 갈비뼈 골절상으로 완치까지 3~6개월이 소요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다.
레비씨는 “이런 일을 겪었지만 한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계속 찾겠다”며 “한인 등 생명을 구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판겸 기자>
8일 자신의 SF 사무실에서 카메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