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이 연주되는 오페라 하우스, 심포니 홀 등에 가보면 대체로 연주되는 곡들이 뻔하다. 낭만주의 70%, 현대음악+바로크 30% 비율이다. 즉 서양음악의 정체성은 낭만주의… 바로 18세기 후반부터 약 1세기 동안에 만들어진 음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낭만주의가 빠진 서양음악은 김빠진 맥주나 다름없다. ‘낭만주의’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긴 힘들지만 인간의 개성과 감정을 강조한, 18 세기 말에 일어난 유럽 근대 문예사조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음악의 경우에도 서양음악이 19세기 이후 세계 음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낭만파 천재들의 역할이 컸다.
진화의 화학반응이라고나할까… 서양음악이 다른 제 3세계의 음악을 제치고 앞서 나갈 수있었던 데는 몇몇 돌연변이… 즉 19세기 천재들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바로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은 너무 커서 19세기의 서양음악… 즉 낭만주의는 이 두 천재를 넘어서기 위한 발버둥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선 베토벤쪽이 미친 영향력을 살펴보면… 직계로 슈베르트가 있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신봉하여 그의 옆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길만큼 베토벤이란 존재는 알파요 오메가였다. 슈베르트의 존재는 너무도 독보적이어서 그 천재성이 후대에 전수되진 못했지만 그가 남긴 감성적인 음악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선배 베토벤조차 감동할만한 것이었다고 한다. 바그너에게 있어서도 베토벤이란 존재는 알파요 오메가이긴 마찬가지였다. ‘베토벤 순례’란 저술을 남기면서까지 베토벤을 신앙했던 바그너였지만 그가 오페라(악극)를 통해 남긴 베토벤 정신은 가히 선배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것이었다.
바그너와는 다소 다른 방향이긴 했지만 브람스 역시 베토벤이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브람스는 베토벤을 신봉한 나머지 그 절대음악으로 돌아가고자 ‘신 고전주의’를 선포하기까지 했다. 베토벤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리는 생각… 베토벤적인 교향곡 한 곡(교향곡 1번 )을 남기고자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을 허비하기조차 한 브람스야말로 낭만주의에 있어서 그 형식미를 완성한, 또다른 유형의 낭만파의 대가였다. 말러는 서구 음악에서 베토벤과 바그너만 있을뿐이라고 말했지만, 낭만주의를 말함에 있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가 바로 모차르트이기도 하다. 낭만주의 출발은 베토벤 시대부터였지만 베토벤을 있게 한 선배가 바로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는 그의 최후의 명작 ‘레퀴엠’을 시작으로 서구 낭만파 시대를 예고했는데, 하이든은 레퀴엠을 듣고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 그리고 레퀴엠 만으로도 모차르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계보를 이어받은 사람들은 독일의 베버를 비롯 이태리의 롯시니 등… 오페라 쪽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러시아 쪽에서는 차이코프스키 등이 모차르트의 사람들이었다.
낭만주의의 족보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 특성을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천재들의 군웅활거 시대’였다는 점일 것이다. 즉 니체의 ‘초인주의’(사상)가 탄생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바로 음악가들이었고 또 천재들이기도 하였다.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이 하늘(구원)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은 비단 문학이나 철학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종교에서 출발한 음악이 (기성)종교와 대립하고 또다른 종교의 문을 열어제친 것은 아이러니였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바그너의 ‘순례자의 합창’은 신을 찬양하는 합창이라기보다는 로마 캐톨릭에 대한 도전… 즉 율법과 교리보다는 스스로 창조하는 자… 즉 (미적구원를 위해) 분투하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합창… 낭만주의의 꽃이었다.
인류 역사상 낭만주의 시대만큼 혜성같은 별들이 한꺼번에 등장한 예는 없었지만, 특히 음악분야에서 심했다.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기적의 성배가 존재할리 없건만 바그너의 ‘파르지팔’이 울려퍼지자 그 추종자들은 마치 성배라도 나타난양 열광했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 음악의 역할을 과신하게 됐다. 너무 무모하면서도 순수하고 또 강렬하고도 정열적이었는데 낭만주의야말로 음악에서의 믿음의 시대… 음악이 하나의 예술장르를 벗어나 철학과 종교… 사상을 아우르는 일종의 성배수호 기사로서의 기적을 추구하려 했던 것은 실제로 너무 과한 노력… 음악의 역할을 벗어난 것이지만 아무튼 음악에서의 기적은 일어났고 그 구원은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낭만주의 시대야 말로 가장 아픔이 많았던 시대… 어쩌면 20세기를 앞둔 세기말적인 공포… (산업시대의)불안과 절망을 창조의 고통으로 이겨낸… 인류의 불꽃이었는지도 모른다. 열망없는 ‘낭만주의’ … 아픔없는 아름다움이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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