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시’란 영화가 있다. 양미자라는 할머니가 문화센터에서 시문학 수업을 받는 이야기와 여학생을 성폭행해서 자살하게 만든 소년들의 부모들이 사건을 합의해 가는 이야기가 주된 뼈대다.
주인공인 미자 할머니는 성폭행에 가담한 아이들 중 하나인 손자를 재혼한 딸 대신 키우고 있다. 할머니는 시 창작 수업을 듣지만 시 한 줄 쓰기도 벅차해 하고, 죽은 소녀에 대해서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손자를 이해할 수 없다. 소년들 부모는 돈을 모아서 죽은 소녀의 엄마에게 합의금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학교에서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까 봐 쉬쉬하고, 죽은 여학생의 엄마도 돈 앞에서 딸을 잃은 슬픔을 덮으려고 한다. 아무도 죽은 여학생이 느꼈을 고통과 외로움, 절망에 대해선 보려고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시 수업을 통해서 시가 어떻게 세상 모든 존재와 교감하는지 알아가고 결국 죽은 여학생의 슬픔을 온전하게 느끼게 된다. 사랑하는 손자의 미래와 소녀가 받았을 고통 사이에서 고민하던 할머니는 손자를 경찰서로 보낸 후 죽은 소녀의 마음을 담은 시 한 편을 남긴 뒤 사라지듯 생을 마감한다. 시가 길어 올린 마음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할 수 있었다고 영화는 말한다.
최근 한국 뉴스에서 19세 소년이 17세 소녀를 말로 하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게 살해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 소년이 괴물이 될 때까지 이 사회가 커다란 숙주가 되어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시를 쓰려던 미자 할머니같이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았더라면 사회가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또 다른 괴물이 자라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모두가 시 하나쯤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을 키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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