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학계 ‘주관적 인지장애’에 관심 높아져
▶ 검진결과‘정상’ 인데 본인은“뭔가 이상하다” 호소 실제로 나중에 발병확률 56% 더 높게 나와 주목 과거‘걱정병’ 치부에서 차츰“심층연구 필요” 단계로
캐롤 밀러(61)는 기억력 감퇴 판정을 받지 않았으나 자신의 인지기능이 정상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이른바 주관적 인지장애 우려이다
나이 들어 기억력이 감퇴하면 덜컥 겁부터 집어먹게 된다. 혹시 치매의 전조가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의사는 그저 자연스런 노화현상이라고 말한다. 분명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 드는데 멀쩡하다니, 병원을 찾아온 환자의 입장에선 한편으론 안심이 되면서도 어딘지 찜찜하다.
보스턴 소재 ‘브리검 앤 위민스 하스피틀’의 신경심리과 전문의 레베카 아마리글리오도 7년 전 기억력 감퇴를 호소한 남성에게 ‘정상’ 판정을 내린 적이 있다. 당시 인지력 테스트를 실시했지만 결과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그의 인지기능에 이상 징후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본인은 “분명히 변화가 생겼다”고 우겼으나 검사 결과에 근거한 의학적 소견으로는 “자연스런 노화현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그러나 7년 후 문제의 남성은 본격적인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아마리글리오 박사는 “나를 찾아왔을 때 그는 오직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인지력 변화를 겪고 있었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검사 결과는 분명 정상인데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을 흔히 ‘건강염려증 환자’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 하면 ‘엄살병’ 환자다.
국립노화연구소의 수석 치매연구원 크레이턴 펠프스는 “솔직히 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의사의 입장에서 검사 결과의 뒷받침을 받지 못하는 환자의 주관적 생각이나 단순한 ‘느낌’만을 토대로 진단을 내리거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의학자들은 인지력 감퇴를 호소하는 ‘엄살환자’ 가운데 일부는 검사로 확인할 수 없는 알츠하이머의 초기 전조증상을 스스로 포착한 것으로 믿는다.
지난 17일 보스턴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총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지장애 우려를 표명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후일 알츠하이머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기억력과 조직력이 감퇴됐다고 ‘엄살’을 부리는 사람의 뇌에서 알츠하이머와 관련된 단백질인 아밀로이드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보스턴 총회에서 참여자들의 관심은 “주관적 인지력 감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 집중됐다. 다른 사람이 알아채기 훨씬 이전에 본인만이 느끼는 기억력과 사고력 위축이 주관적 인지력 감퇴다.
연방 정부가 추진하는 ‘내셔널 알츠하이머스 프로젝트’의 자문위원회 회장인 도널드 페터슨 박사는 메이요 클리닉의 알츠하이머 센터가 미네소타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의 예비결과는 주관적 인지력 감퇴를 느끼는 사람이 후일 치매 전조인 온건한 인지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56%가 더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렇다고 해서 주관적 인지력 감퇴를 호소하는 사람들 모두가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기억력 쇠퇴는 대부분 정상적인 노화의 결과이고 이 경우의 인지력 장애 우려는 심리적 불안감을 반영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무엇 때문에 주방에 들어갔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린다든지 그리 친숙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까먹는 따위는 대체로 정상적인 노화현상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반면 최근에 생긴 중요한 일의 세부내용을 잊어버린다거나 익숙한 장소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TV 드라마, 혹은 책의 내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위험신호다.
주관적 인지장애 우려의 상당부분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마리글리오 박사는 그의 보고서를 통해 고학력자들이 인지력 변화를 더욱 예민하게 감지한다고 주장한 반면 정반대로 저학력자들이 더 예민하다고 결론지은 보고서도 나왔다.
주관적 인지감퇴 우려가 환자 스스로 지각한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근심 자체가 위험을 높이는 것인지조차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집안에 치매 병력이 있는 사람은 지레 겁먹고 그야말로 엄살병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정기적인 주관적 인지하락 검사를 권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데다 아직은 효과적인 치매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주관적 인지력 장애 우려를 측정 불가능하며, 우울증 및 불안감과 관련되어 있는 감정 정도로 간주했다.
독일 신경퇴화질환센터의 프랭크 제센은 주관적 인지력 감퇴에 관한 그의 첫 논문이 여기저기서 퇴짜를 맞았다고 털어놓았다. 오래 전도 아닌 2004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2012년의 논문은 그저 몇 개의 자료를 보탰을 뿐인데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학술저널인 뉴롤로지에 의해 채택됐다. 주관적 인지력 감퇴 우려라는 명칭도 이때 처음 만들어졌다.
자각증세가 빨리 오는 병증은 주관적 인지력 장애만이 아니다. 관절염이나 파킨슨씨병 환자도 다른 사람이 알아채기 전에 본인 스스로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자각한다.
치매의 대부분 단계에서 가족과 친구들은 점차 악화되는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게 되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이를 모른다. 그럴 능력이 없다.
그러나 주관적 단계에서는 반대다. 본인은 미묘한 인지기능의 변화를 알아채지만 가까운 친구와 친척은 감도 못 잡는다. 이 단계에서 환자의 모든 뇌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로저 시글(84)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5년 전에 알았다. 그는 이제 그가 원하는 수준의 30%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게다가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졌다. 도무지 한 가지 문제에 정신을 집중시킬 수가 없다.
그는 샤워를 하면서 왼쪽 다리를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등장인물에 혼란을 느낀다.
최근 그는 파이 속(filling)을 여섯 병이나 샀다. 물론 그렇게 많은 파이 속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점원에게 파이 속 파는 곳이 어디냐를 물었더니 6번 진열대로 가라고 했다. 기억력에 자신이 없는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 6이라고 써넣었다. 하지만 진열대에 도달한 후 그는 파이 속 여섯 개를 집어 들었다. 왜 6이라는 숫자를 써놓았는지 혼란이 온 것이다.
시글은 자신의 인지력이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기 몇 년 전부터 병원을 찾아다니며 “뭔가 이상하다”고 하소연했으나 주치의는 “모든 뇌기능이 정상”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다른 전문의를 찾아 나섰고 3년 전 애리조나주의 메이요 클리닉에서 주관적 인지력 장애를 연구해온 리처드 카셀리 박사를 만났다. 카넬리 박사는 그가 극히 초기단계의 인지장애 증상을 보인다는 진단을 내렸다. 주관적 인지장애 판정을 내린 셈이다.
치매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모르지만 주관적 인지장애자는 자신의 미래를 예측한다. 그들이 정말 두려운 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확실한 가능성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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