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아마 이 노래만큼 재미 동포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아리랑 다음으로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자들에게 고향을 상기 시키고, 어릴 때의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지난주 나는 이 노래를 생애 중 가장 감동적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고 몇년 동안 이웃에 살고 있었던 한 장로님내외가 결혼 70주년을 맞았고, 또 장로님의 연세가 90세가 되어서 겸사겸사 자녀들이 만든 축하연에 참석할 수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슬하에 삼남 삼녀, 여섯 분의 자녀들을 두셨는데 그들이 부모님의 특별한 잔치를 맞이해서 함께 부른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그분들이 불렀던 나의 살던고향은 꽃피는 산골의 노래가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어울려 퍼졌고, 장로님은 그때안경을 벗으시고 조용히 눈물을 닦으셨다.
아마 그때의 눈물은 슬퍼서가 아니라 감격의 눈물이었고, 기쁘고 감사하고 온갖회포가 쌓인 눈물이었을 것이다. 옆 자리에 앉았던 나도콧날이 시큰해지는 감동을받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그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날 장로님의 직계 자녀들은 제일 꼬마인 삼개월짜리 증손녀를 포함해 거의 사십명에 가까웠으니 실로 대단한 축복을 받은 집안임에는 틀림없다. 장로님이 50년대에 홀로 미국에 오셔서 결국 의사가 되셨고, 여섯명의자녀들은 약사며 교수며 정신과 상담사, 또 사위들은 국제적인 변호사, 과학자들을배출했으니 이 미국 사회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는 소위잘 나가는 누구보다 성공한집안이다.
내가 그날 가장 부러웠던것은 세속적인 성공뿐 아니라 그 가족은 믿음의 가족으로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집안이기때문이기도 했다. 장로님의고향은 평북 선천으로 이미거의 백년전에 그 고향에 교회를 만드셨고 그 사진이 거실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나도 본적이 있다.
그 누구나 이민생활을 수십년 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몇배나 힘든 생활을 했음에 틀림없다. 우리들 모두에게 한때 살았던 정든 고향이 있고, 이제 그곳에서 수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살면서 고향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정답고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재미 있었던 것은 2세만 되어도 영어가 더 쉽고 그것이 그들의일상어이기 때문에 그 노래를 부른뒤 막내 따님이 영어로 통역을 하고, 계속 진행되었던 모든 프로그램도 항시두 나라 언어가 함께 공존해서 과히 범 글로벌적인 잔치임을 과시했다.
장로님은 아직 정신도 좋으시고 90세란 연세에 비해강건하시지만, 부인이신 권사님은 기억력이 많이 쇠퇴하시고 다리도 아프시고 해서상당히 약해지신 것을 느꼈다. 권사님은 이 세상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착하신 분이시다. 자신의 여섯 자녀뿐 아니라 손주들도몇명을 기르셨기 때문에 손주들이 달려와 그랜마! 아이러브 유! 하면서 뽀뽀들을 해주었다. 그 광경도 가슴 따뜻해 지는 모습이었다.
큰 따님이 약사이시고 내대학교 후배여서 몇년 동안을 아주 가깝게 지냈다. 일주일에 몇번씩 밥도 같이 먹고 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셔서 그때 그 가족은 물론이려니와옆에서 보던 나도 그렇게 가슴이 아플수가 없었다. 온갖고생 다하고 이제는 살만하니까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너무 안타까웠다. 그분 뿐만아니라 많은 한국 사람들이고생 끝에 낙이 아니고 고생끝에 유명을 갑자기 달리 하는 것을 보고 너무 세상이허무한 경우가 많았다.
주변에 내 친구 한명도 기독교 집안인데, 아버지가 의사셨고 또 장로님과 세브란스 대학 동문이면서 마산 요양원에도 같이 근무하신 분도 지금은 유명을 달리 하셨지만, 그분 집안도 만만치 않게 축복을 받은 집안이다. 얼마전 요세미티 공원에 모든가족이 다 함께 모여 집안잔치를 했는데, 올해 아버지의 자서전을 따님이 영어로집필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은 경상도 어느 시골출신이신데 고등학교를 갈때 무척 가난해서 이웃들이쌈지돈을 모아 그분의 학비를 도왔고, 그것을 잊지 못했던 그분은 수십년뒤 고향을찾아가 그 돈의 몇배나 되는돈, 선물로 그분들의 정성을갚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마음이 훈훈해지는 그런 경험을 한적이 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은혜는 물에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듯이 열번 잘해주어도 한번못해주었다고 그것만 서운해하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들은 모두 가끔 가슴에 손을 얹고 어떤 사람에게내가 감사해야 할것인가를물어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오늘 걸으면서 내가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하면서 콧노래를 불러본다.
언제 어디서 불러도 마음이따뜻해 지는 노래다. 나는 어느덧 어릴 때 살던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피던 고향의 과수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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