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후변화와 폭력성의 인과관계’ 논문 주목
▶ 지금같은 기후변화 계속되면 지구촌서 전쟁·소요사태 2050년까지 56% 가량 증가 개인간 살인·강간 등도 16%↑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한참 전인 1938년, 레이먼드 챈들러는 매년 LA시를 휩쓸고 지나가는 건조하면서도 화덕처럼 뜨거운 샌타애나 열풍의 폭력적인 효과를 그의 소설에 생생히 묘사해 놓았다‘. 붉은 바람’(Red Wind)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 그는“모든 술자리가 싸움으로 끝이 난다”고 썼다.
뜨거운 샌타애나 열풍의 세례 속에 벌겋게 취한 친구들은 심한 주사를 부리고, 격렬한 다툼을 일으킨다. 화기애애하게 시작한 술자리는 열풍에 실려 온 짜증스런 더위 속에 악다구니가 난무하고, 코피가 터지고, 머리가 깨지는 난장판으로 마감된다. 마치 못된 마법사의 주문에 걸리기라도 한 듯 평소 무탈한 사이였던 술 동무들이 별것 아닌 일로 서로를 향해 한껏 부풀어진 적의를 드러낸다. 다른 때 같으면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사소한 일이 난폭한 싸움을 일으키는 뇌관이 된다.
가만히 있어도 엉겁결에 욕지기가 튀어나올 만큼 뜨거운 날, 왁자하게 술판을 벌인 경험이 있는사람들에겐 작가의 묘사가 그리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도로의 아스팔트가 녹아나는 더위 속에서는 인간의 이성과 자제력도 흐물흐물 해체된다.
소설의 그 다음 대목은 훨씬 섬뜩하다.
샌타애나 열풍이 불어오면 “유순하던 아녀자들이 남편의 목 줄기를 노려보면서 식칼의 날을만져본다”남편의 방종과 학대를 묵묵히 견뎌온 아녀자가 갑자기 살의를 품는다. 남편의 숨통을 끊어놓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시퍼렇게 날 선 식칼을만지작거린다.
뜨거운 샌타애나 광풍이 아니라면, 그 열풍을타고 온 사막의 열기가 부린 조화가 아니라면 이처럼 느닷없는 폭력성을 설명하기 힘들다.
사회 비평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극심한 더위가 인간의 마음속에 갇혀 있던 야수를 풀어놓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높은 기온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초래한다는 이른바‘ 더위 가설’ (heat hypothesis)이 나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운전도중 잔뜩 열을 받는 ‘로드 레이지’ (roadrage)와 고대의 전쟁, 메이저리그 야구경기 등의사례를 이용해 과학자들은 기후 온난화가 개인대 개인, 집단 대 집단의 크고 작은 충돌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수량화하기 위한 초기단계의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지난달 버클리의 대학원생 3인방은 기후변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전망한 기온상승과 극단적인 강우 패턴을 바탕으로 지금부터 2050년에 이르는 기간에 지구촌의 전쟁과 소요사태가 56%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마찬가지로 살인, 강간, 가정폭력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폭력도 1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사이언스 저널에 실린 보고서에서 연구원들은“기후와 인간 사이의 다툼을 연결해 주는 인과적인 증거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버클리의 연구는 제네바 세계 기후연구 프로그램의 자료를 근거로 지구촌 기온이 앞으로 반세기에 걸쳐 최소한 화씨 4도가량 상승한다는전제하에 이루어졌다.
광범위한 지역적 기후변화나 달라진 강우 패턴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가 새로운‘ 열의 원천을개발하거나 가뭄에 저항력을 보이는 품종을 개량하는 등 자구적 적응작업을 게을리 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또 다른 전제다.
이와 같은 기본원칙 하에서 연구팀은 기후학,고고학, 경제학, 정치과학과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관련 논문 60편을 검토해 추려낸 내용을 통계적 준거들과 대비시켜 분석했다.
논문 가운데는 인정사정없이 뜨거운 날 피닉스의 교차로에서 일부러 차를 가로막아 정체를일으킨 후 에어컨이 장착된 차량 운전자와 깡통차 운전자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분통을 터뜨리고 경적을 울려대는지를 조사한 것도 있었다.
또 다른 연구는 기상일지와 메이저리그 야구경기 기록을 참조, 수은주가 아찔하게 치솟았던날을 골라낸 후 그날 경기에서 투수들이 타자의몸에 맞는 빈볼을 몇 개나 던졌는지 확인해 시즌평균 수치와 대조했다.
이외에 한때 강력했던 동남아시아의 왕국이었던 앙코르와트의 멸망에 극심한 가뭄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 위해 고목들의 나이테를 측정한 연구와 중동지역 바다 속 해저 침전물을 분석. 4,000년 전 위세를 떨쳤던 아카디안제국의 붕괴와 당시 진행됐던 사막화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처럼 서로 무관한 분야에서 진행된 연구는다양한 접근방식을 취했으나 거기서 도출된 결과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연구가 언제, 어느 지역에서 실시됐는지에 상관없이 이들이 찾아낸 증거는 늘기온과 강우량이 전쟁이나 충돌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버클리 연구팀은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앞으로 37년 사이에 전쟁을 비롯, 인간집단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일어날 확률이 28~56%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같은 기간 개인 사이의 폭력적인다툼도 8~16% 증가하리라는 게 이들의 예상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3인의 공동저자 가운데 한 명인 버클리 대학원생 마셜 버크는“ 우리의 연구는상당히 우려스런 결론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학위 논문을 위해 기후변화가 식량안보에 미치는영향을 추적 중인 버크는“ 그러나 지구촌 거주민들이 자제를 통해 미래 기후변화 속도를 둔화시킨다면 이로 인한 피해를 상당부분 축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버클리 연구팀의 또 다른 멤버인 솔로몬 샹은농경시대의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했다고 지적했다.
이상고온과 가뭄이 장기화되면 작황은 타격을받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식량이 귀해지고, 필연적으로 배를 채우기 위한 물리적 다툼이 일게된다. 농경시대에 심한 가뭄으로 국가 차원의 흉년을 맞게 되면 물리력을 동원한 약탈 이외엔 뚜렷한 대안이 없다.
샹과 그의 동료들은 더위와 공격성 사이에 생리적 인과 고리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면서도 분명한 원인을 특정 짓지 않았다.
버클리 3인방은 이를 흡연에 비유했다.
버크는“ 1930년대 과학자들은 흡연과 폐암 사이에 강력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으나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둘을 연결하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알아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연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아이오와 주립대학 심리학 교수인 크레이그 앤더슨은 이들이“ 이질적인 데이터를 분석해 급속한기후변화가 폭력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주장을설득력 있게 제시했다”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는 “날씨가 더우면 사람들은 사소한 문제를더욱 심각한 도발로 간주하고 물리적으로 대처하려는 경향을 띤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르웨이 오슬로의 평화연구소 정치학교수인 할바드 부호그는 “자료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전 인류사를 통해 전쟁이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기후 이상으로 인해 촉발됐음을 시사하는 예를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사실 더위가 집단적인 히스테리를 불러일으켜전쟁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는지를 확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레이먼드 챈들러가 그의 소설 속에 묘사한 것과 같은 더위와 폭력성 사이의관계를 송두리째 부인하기도 어렵다.
만일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샌타애나 열풍이불어오는 날, 그 뜨거운 바람을 맞아가며 불볕더위의 무자비한 세례를 받아보라.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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