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험자의 고충과 조언 들어보니…
▶ 잘 나가던 직장서 느닷없이“짐싸라” 의료보험 잃었는데 건강까지 악화 “나이가 죄”이력서 수백곳 응답 없어 눈높이 낮추고‘시간과의 싸움’해야
자원봉사자 네트웍인 네이버스-헬핑-네이버스 창립자 존 푸가지는 수퍼마켓 체인업체인 A&P의 유제품과 냉동음식 총책임자로 연 12만5,000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직장인이었다. 그는 10개월 전 해고된 후 아직까지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존 푸가지에게 세상은 온통‘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수퍼마켓 체인업체인 A&P의 유제품과 냉동음식 총책임자로 연 12만5,000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그는 분명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그의 연봉은 호사스런 삶을 감당할 정도는 못되지만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높은 소득을 올리는 월급쟁이는 숱하게 많다. 하지만 뉴저지에 28개의 지부를 지닌 네트워킹 기구의 창립자이기도 한 그는 정신적으로 여유롭고, 정서적으로 윤택한 사람이었다.
네이버스-헬핑-네이버스 USA(Neighbors-Helping-Neighbors USA)라는 이름의 이 기구는 실직자들의 재취업을 도와주는 단체다.
현재 이곳에는 주로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한 실직자 1,200여명이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취업 상담, 추천서 제공과 일자리 소개 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한 가지 특징은 네이버스-헬핑-네이버스를 찾는 실직자 대부분이 한 때 잘 나가던 전문직 종사자였다는 점이다. 인생의 정점기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정리’된 ‘잉여인력’이 방문객의 주류를 이룬다.
지난 2012년 9월 존이 백악관 고용창출 포럼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받을 받은 것도 바로 이 네이버스-헬핑-네이버스 설립자의 자격으로였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과 마주앉아 고용창출에 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그대로 흘려보냈다. 하필이면 아들 대학 졸업식과 겹친 탓이었다.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의 우선순위는 투명하고, 확실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57번째 생일을 앞두고 직장에서 정리됐다. 세상에 태어난 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일터에서 목이 잘려 ‘제도적 죽음’을 맞은 셈이다.
달랑 한 상자분의 사물을 챙겨 직장을 나선 이후 10개월 동안 존은 필사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으나, 허사였다. 400통 이상의 이력서를 보냈고, 열 번의 면접을 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재취업을 희망하는 실직자들에게 도움을 제공해 온 그가 창졸지간에 자신이 창립한 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머쓱한 입장에 놓이고 말았다.
소득이 끊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숏세일로 집을 내준 후 가족과 함께 88세된 노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그는 지난달 땀에 흠뻑 젖은 채 새벽 4시30분에 깨어났다. 심장마비였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미국인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대개 의료보험마저 잃어버린다. 대부분 직장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기엔 꼴 같지 않아도 직장 의료보험이 얼마나 믿음직스런 방패인지, 실직자는 안다. 존 역시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병원에 입원해 6일을 지낸 존의 빚은 무려 17만1,569달러44센트가 늘어났다.
지난 8월15일, 그는 자신이 설립한 일자리 클럽의 모임에 나가 “나 역시 실직자”라고 실토했다.
오랜 카운슬링 경험을 통해 그는 나이든 취업 재수생들의 고충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한다. “나이든 근로자들에게는 대개 부양가족이 딸려 있다. 부모를 모셔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새로운 기능을 익히고 취업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그들에겐 없다.”그 날 네이버스-헬핑-네이버스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연령층이었다. 한평생 일을 하다가 경기침체로 인해 일터에서 몰려난 사람들이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이들은 재취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불길한 예감에 가위 눌려 있다. 무엇보다 나이가 문제다. 연령차별이 거의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나이든 실직자들에게 취업문은 바늘구멍보다 좁다.
정말 운이 좋아 다시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임금수준은 이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중년이상 연령층에 속한 재취업자 가운데 3분의 2 이상은 상당한 폭의 임금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
20~24세 재취업자의 경우 임금 축소 폭이 평균 6.7%에 불과한 반면 55~64세 그룹은 평균 18%가 줄어든다.
재취업률도 55~64세의 경우 47%로 20~54세 그룹의 62%에 비해 훨씬 낮다.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부머세대 쪽이 압도적으로 길다. 16~24세 그룹은 20주인 반면 55~64세 연령층은 두 배가 넘는 46주다.
알게 모르게 연령차별이 작용하기 때문이지만 경기침체 이후 법원은 이 문제에 관한 한 고용주의 손을 들어주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경제가 바닥을 친 2009년 연방 대법원은 연령차별 입증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명명백백하고 공개적인 연령차별이 아닌 한 이제는 더 이상 법원의 판결에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변호사들도 연령차별 소송을 맡지 않으려든다.
일자리 클럽 회원들은 하나같이 50을 넘어선 나이가 적지 않게 부담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54세라고 밝힌 한 여성은 이력서에 나이를 10년 어리게 써 넣고 네트워킹과 구직 사이트에 사진을 띄우지 않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곧이곧대로 나이를 밝히면 면접기회를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존은 ‘꼼수’는 ‘자충수’라며 나이를 속이지 말라고 조언했다. 서류상으로 나이를 속인다 해도 면접관은 장님이 아니다.
인터뷰를 할 때 노골적으로 나이를 확인하려 들지는 않겠지만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다.
존은 “나이 든 직원을 채용하려 들지 않는 회사라면 당신이 먼저 차버리라”고 말했다. 그는 재취업을 노리는 50대 실직자의 경우 낮추어야 할 것은 나이가 아니라 눈높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공연한 욕심 부리지 말고 면접관에게 자신이 팀 플레이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최상의 면접전략이다.
나이든 실직자에게 가장 큰 ‘적’은 시간이다.
네이버스-헬핑-네이버스의 설립자답지 않게 존도 점차 평상심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택시미터기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승객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갈 길이 바쁜데, 택시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무심한 시간이 쉬지 않고 흐르면서 미터기의 요금만 또박또박 올라간다.
이제야 느끼는 것이지만 그의 어깨위에 쌓여진 시간은 너무 무겁고, 눈앞에 펼쳐진 시간은 무섭기까지 하다. 그래도 그는 네이버스-헬핑-네이버스의 동년배 회원들에게 “인내”를 당부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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