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논리적으론 해결 안 되는 첨예한 문제
▶ “태아의 생명권·엄마 건강 모두 해치는 일’ “폭력 등으로 임신한 빈민여성 도움 절실” 흑백논리 배제하고 건강한 토론 이어가야
낙태허용은 찬반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는 예민한 이슈다. 지지자들은 여성의 선택권에 무게를 두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앞세운다. 현재의 판세는 낙태권 지지자들에게 다소 유리한 듯 보이지만 속사정을 털어놓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73년‘로우 대 웨이드 사건’(Roe vs Wade)의 판결을 통해 임신 3개월까지는 여성의 신체자율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정했다. 기본적으로 낙태권 지지자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러나 임신 4~6개월 사이에는 공인된 병원에서만 낙태가 가능하며, 7개월 이후부터는 중절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부분적 제한을 가했다.
낙태문제는 대통령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중요 이슈로 떠오른다. 낙태와 관련해 보수적인 공화당은 ‘반대’ 입장을, 진보적인 민주당은 ‘지지’ 입장을 당론으로 내걸고 있다.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후보의 견해를 보수성과 진보성의 순도를 측정하는 시금석으로 여기기 때문에 본선 행 티겟을 따내기 위해 예비후보들은 어느 쪽이건 선명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연방 대법원은 유사소송 상고를 통해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 따라서 연방 대법관 9인의 정치적 색깔은 낙태 찬반세력 모두의 주요 관심사다.
어쨌건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낙태권은 여성의 헌법적 권리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다 풀린 것은 아니다.
공화당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낙태에 제한을 가하기 위해 깊숙한 태클을 건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 이후 공화당은 낙태를 막기 위한 장벽을 여기저기 세워 놓았다.
판결을 완전히 뒤집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일단 낙태를 어렵게 만드는데 주력했고, 이 같은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
공화당은 우선 연방 의회와 주 의회 차원에서 낙태 접근권을 막는 법을 제정하는데 힘을 썼다. 1970년대 말 낙태시술소에 대한 연방 정부의 재정지원을 대부분 끊어버린 것이 공화당이 올린 최대 성과 가운데 하나다.
정부의 금전적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낙태시술소는 자금난으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대상은 빈민층 여성이다. ‘의도되지 않은 임신’을 끝내고 싶어도 수술비를 마련하기 힘들다.
수술비는 임신기간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임신 10주까지는 500달러, 24주까지는 3,000달러 선이고 어려운 케이스의 경우 최고 1만 달러까지 올라간다.
공화당이 마련한 제한규정은 이 외에도 많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은 설사 자비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해도 24시간의 대기시간을 거쳐야 수술대 위에 누울 수 있다. 시술소를 찾는 임신부의 대다수가 빈민층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만들어낸 규정이다.
연방 재정보조가 끊어진 탓에 여기저기서 많은 낙태시술소들이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이전에는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시술소가 있었지만 이제는 4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왕복 8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하고, 예약 후 24시간의 대기기간을 거쳐야 하니 하루나 이틀, 혹은 사흘간 일을 할 수 없다.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 어린 자녀를 맡아 돌봐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맨입으로는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힘들다.
낙태시술소에 대한 연방 정부 보조가 끊어진 직후 미 전역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다. 낙태를 원하는 빈곤층 여성을 지원하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었다.
아직도 대부분의 주는 낙태수술을 메디케이드 적용범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메디케이드는 빈민을 위한 정부보험이다.
크리스탈 톰슨(31)은 2006년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앞이 깜깜했다. 아이를 낳아 키울 능력도, 태속의 생명을 지울 능력도 크리스탈에겐 없었다.
공황상태에 빠진 그녀에게 생명줄을 건네준 곳은 자원봉사 단체인 시카고 어보션 펀드였다. 지금 그녀는 이곳의 지도부에 속해 있다.
세 자녀를 둔 크리스탈은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한 빈민 여성에게 낙태기금은 마지막 ‘생명줄’이라며 이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국 103개 낙태펀드로 구성된 전국 연맹체는 지난해 2만1,000명의 여성에게 총 300만달러를 지원해 주었다. 지난 5년간 기금제공 규모는 계속 이 수준을 유지했다.
언뜻 듣기엔 꽤 많은 액수인 듯싶지만 실제 지원금은 1인당 평균 400달러에 불과하다.
전국 연맹 회장 당선자인 린제이 로드리게즈는 올해에는 평년보다 3분의 2정도 많은 기금을 거둬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낙태와 관련한 이슈가 불거질 때 기부금이 늘어나는 이제까지의 추세로 보면 린제이의 예상이 적중할 공산이 크다. 기부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 올해의 이슈는 낙태제한을 강화하기 위한 텍사스주 의회의 시도이다.
하지만 낙태기금은 늘 딸린다. 수요를 따라가기는 불가능하다.
한 예로 낙태펀드 연맹체에 속한 ‘릴리스 펀드’는 지난 2012년 핫라인을 통해 3,443건의 도움 요청을 접수했다. 2010년의 2,330명에 비해 47%가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뉴욕 어보션 액세스 펀드’는 287명의 여성에게 총 8만9,708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정했다. 전년 대비 31% 늘어난 액수다.
최근 이 단체의 자원봉사자들은 한 빈민 여성의 낙태경비 마련을 위한 온라인 캠페인을 펼쳐 2시간반 만에 3100달러를 모금했다.
허세이 펀드가 지난해에 접수한 도움 요청 전화는 2년 전의 두 배인 517통에 달했다. 허세이 펀드는 지난 2년에 걸쳐 423명에게 재정지원을 해주었다. 2년간 135%가 늘어난 수치다.
지원을 늘릴 수 있었던 것은 기부금이 늘어난 덕택이었다. 그리고 기부금이 증가한 이유는 낙태를 원하는 미네소타의 빈민 여성들에게 메디케이드 가입 자격을 부여하라는 캠페인에 기부자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은 태아 생명권을 옹호하는 단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 가운데 하나인 ‘내셔널 라이트 투 라이프 커미티’의 캐롤 토비아스 회장은 “도대체 낙태지원이 어떻게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아를 죽이고, 엄마의 건강을 해치는 낙태지원을 최상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궤변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캐롤은 “아기에게도 엄마에게도 낙태는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며 “그로 인해 해당 여성이 짐 져야 할 결과는 물리적일 수도 있지만 감정적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낙태펀드에 속한 자원봉사자들은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한 빈민층 여성들을 찬바람 속에 마냥 세워둘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임신상태를 유지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심한 찬반이 따르는 이슈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나름의 확고한 대의명분과 논리를 갖추고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에서 접근하려 들면 전혀 해결을 볼 수 없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 단순명료한 흑백논리를 배제하고 끊임없이 논쟁하는 사회가 비생산적이긴 해도 도덕적으로 건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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