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종선택 유언장’ 써 놓으셨나요
▶ "세상과 작별방식 내 뜻에 따라달라” 치료중단·마지막 거처 등 미리 부탁 가족들이 겪게될 부담과 혼란 줄여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 뿐이다.” 미국인들이‘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드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여기에는 누구나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듯, 세금도 피하고 싶어 한다는 속뜻이 숨어 있다. 하지만 방점을 어디에 찍고, 어떤 식으로 해석하건 결론은 피할 수 없음, 즉‘불가피’로 모아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의 비유는 온전치 않다. 적법한 방법은 아니지만, 세금은 피할 수 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연기도 가능하다. 따라서 프랭클린이 남긴 경구는“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뿐이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죽음과 세금 사이의 차이는 또 있다.
세금은 정확한 납부일이 정해져 있다. 반면 인간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나 시한부 삶을 살아가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불치병 환자조차 정확한 ‘생명 반납일’을 알지 못한다.
세상에 나오는 순서는 있어도 퇴장하는 순서는 없다고들 한다. 죽음 그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불확실하다.
바로 이 같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혼재된 특성으로 인해 삶의 끝맺음, 즉 임종에는 반드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언장 작성이다.
유언장 작성은 ‘도둑’처럼 찾아들 죽음에 대비해 “나 가거든” 이렇게 해달라는 분명한 의사를 사전에 밝혀 두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유언장이란 ‘떠나는 자’가 ‘산 자’에게 남기는 사후처리 지침이다.
반면 존엄사 유언장(living will)에는 “내 인생을 이렇게 끝맺어 달라”는 환자의 생애 마지막 선택과 주문이 담겨 있다. 대체로 “인위적인 생명연장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여기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혀둘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유언장은 환자가 죽은 후에 집행되지만, 사망선택 유언장은 숨을 거두기 전에 효력을 발생한다.
존엄사 유언장은 환자의 임종관리에 대단히 요긴하다. 사망에 앞서 환자가 의식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지는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명보조 장치에 발목을 잡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환자들이 부지기수다.
의식이 남아 있다 해도 치매나 인지력 손상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는 환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하직 절차를 일임하게 된다. 여기에 선택의 여지란 없다.
‘보호자’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본인의 ‘사전 지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환자의 생명보조 장치를 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할 순간을 맞은 보호자들은 허둥대게 마련이다.
사망의 문턱에 도달한 환자의 상태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에 못을 박는’ 것과 같은 호흡기 제거 결정은 두렵고 죄스럽다.
2004년 세계 최고 의학 학술지 랜셋(Lancet)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인디애나폴리스의 2개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의 약 40%는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보고서 작성자인 인디애나대학 내과학 조교수이자 임종간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레진스트리프 인스티튜트의 생명윤리 연구원이기도 한 알렉시아 톨키 박사는 환자의 대리인 역할을 한 35명의 보호자들을 상대로 무엇을 근거삼아 어떤 과정을 거쳐 생명연장 치료, 수술, 호흡기 제거, 퇴원 후 마지막 거처 등에 관한 ‘중대 결정’을 내렸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 대부분은 환자의 가족일 뿐 그가 선택한 법적 대리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가 사전지침을 남기지 않았고, 자신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대리인을 미리 지정해 두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은 최종 결정자 가운데 ‘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직접 대면방식으로 보호자 한 명당 평균 40분씩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톨키 박사는 다른 조사를 통해 이미 밝혀진 중요한 사실, 즉 대리인이 환자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고려사항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곤 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톨키 박사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이를 ‘환자 위주’가 아닌 ‘대리인 중심적’ 결정으로 규정했다. 환자 위주의 결정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환자의 바람과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이다.
환자가 남긴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대리인은 평소 당사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헤아린다.
예컨대 “엄마는 여전사였다”거나 “아마도 그녀는 더 이상의 고통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평가와 판단이 이 범주에 속한다.
어머니를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여전사”로 기억하는 가족은 생명연장 쪽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고, “무의미한 고통을 원치 않을 타입”으로 평가한 보호자는 호흡기 제거를 지시하게 된다.
물론 환자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리려는 시도가 잘못된 결정으로 끝날 수도 있다. 환자의 뜻을 잘못 추측할 수도 있고, 기억이 부정확하거나 부족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들은 최소한 환자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하다.
대리인 중심적 접근법은 자신이 환자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종교적 믿음이나 영적 지침을 나침반으로 활용하려는 대리인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완전히 다른 결정을 내렸으면서도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톨키 박사의 조사에 참여한 대리인들은 대부분 개신교도들이었으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쪽이건 맞서 싸우는 쪽이건, 거기에 합당한 그럴싸한 논리를 제시했다.”대리인들은 다른 가족 구성원을 결정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이는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에 해당한다.
환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건 상관없이 가족들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가족 차원의 집단적 의사결정은 책임을 공유하고 죄책감을 피하기 위한 방법의 일종이다.
어느 쪽이건 비난할 여지가 많지 않다.
자신이 자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에 대비해 환자는 그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해 줄 사람을 대리인으로 지정한다.
현재 환자가 처한 상황과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보고 최상의 결론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대리인의 역할을 맡아주길 원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딸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은 임종방식과 관련, 완전한 ‘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한다. 자신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삶을 마감하길 원한다.
만일 당신도 같은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사망선택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 좋다.
물론 가족 구성원들과 이 문제를 두고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는 게 바람직하다. 자녀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인지시키면 실제상황 발생 때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환자의 임종선택도 결국 ‘산 자’를 위한 것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