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심한 불황 탓‘불확실한 미래’…출발부터 중압감 외부로 발산 못 하는 여학생들 경우 우울증 더 심해
▶ ■ ‘대학 새내기 정신건강’ 2010년 최저 의미는
대학 신입생들은 심한 정신적 중압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실시하는 서베이에서 자신의 정신건강이 평균이하라고 말한 학생들의 수는 경기침체가 극에 달했던 지난 2010년에 25년래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대학 신입생은 종달새마냥 즐거울 것이라 상상하기 쉽다. 이들을 들뜨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다. 권리보다 의무가 앞서는 고교시절, 대학진학 준비를 위해 유보해야 했던 자유를 이제는 맘껏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신입생들을 달뜨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흘러간 옛 노래일지 모른다.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연례 서베이는 이들의 정신건강이 전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보여준다.
2010년의 조사결과를 기준할 경우 25년 만에 최저수준이다. 서베이가 1985년부터 시작됐으니 ‘사상 최저’ 수준이라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미 전국의 4년제 대학에 진학한 20여만명의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도 서베이 자료에 따르면 자신의 정신건강 상태를 ‘평균 이하’로 평가한 학생의 비율이 높게 늘어난 반면 평균 이상이라는 대답은 1985년의 64%에서 52%로 뚝 떨어졌다.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은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학생들 가운데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점이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매년 그랬다. 게다가 해를 거듭할수록 남녀 사이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교내 카운슬러들은 잔뜩 주눅 든 신입생들을 상담하느라 새 학기 초부터 바쁘다. 이들에게는 대학 새내기들에게서 느껴지는 풋풋한 싱그러움이 없다.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고교시절의 성적 스트레스로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처방약을 사용하기 시작한 ‘우울증 환자’도 적지 않다.
카운슬러들은 신입생의 정신건강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또 하나의 주요 요인으로 불경기를 꼽는다. 바닥으로 추락한 경제는 부모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당장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학부모의 현실적, 심리적 부담이 가장 크겠지만 졸업 후 취업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학비 융자금을 꺼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신입생들을 지레 풀죽게 만든다.
웨스턴 켄터키대학 카운슬링 디렉터이자 미 대학카운슬링협회 회장인 브라이언 반 브런트는 서베이 결과는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는 상황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2010년도 서베이 자료가 특히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불황과 대학 신입생의 정신건강 사이의 함수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0년은 리먼 브라더스 도산을 신호탄 삼아 시작된 장기불황이 정점에 도달한 시기다. 한마디로 젊은이의 희망을 잔뜩 위축시킨 ‘궁핍한 시대’인 셈이다.
브런트는 “학비융자를 신청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 설사 제때 졸업을 한다 해도 나를 기다리는 일자리가 있을 것인지’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한 담대하고 강한 희망과 ‘구원’의 확신이 없으니 현재의 삶이 불안스럽게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국 신입생 서베이는 그 규모와 연조로 인해 이 분야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종합적 데이터로 간주된다.
하지만 맹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우선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신건강을 평가하고 타인과 비교토록 하는 접근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신건강에 대한 확고하고도 보편적인 정의와, 어떻게 동료 신입생들과 정신건강 상태를 비교할 것인지에 대한 객관적 판단기준이 필요하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를 통해 객관적인 결론을 끌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학신입생 서베이는 높은 수준의 신뢰도를 자랑한다.
브런트는 대학 새내기들의 정신건강 하락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자체 점수는 떨어졌지만 학구열과 성취욕에 대한 평가는 2010년 조사에서 최고치를 찍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2010년도 서베이에 참여한 학생들의 4분의 3은 자신의 학구열과 성취욕을 ‘평균 이상’으로 채점했다.
이 정도면 대부분의 신입생들이 대학생활을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는 정신적 준비를 갖추었다고 보아 무방하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새내기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학구열과 성취욕이다.
이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은 학업에 관한 심리적 부담이나 의욕 결핍이 아니라 졸업 후의 불확실성이다.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불황을 겪으면서 이들의 젊은 가슴 속에 희망 대신 불안감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는 얘기다.
서던 오리건 대학 기숙교육 디렉터인 제이슨 에벨링은 “새로 대학에 들어온 젊은이들은 그들이 부모세대에 비해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장만으로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일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사실에 미리 겁을 집어 먹는다는 지적이다.
연례 신입생 서베이를 담당하는 UCLA 고등교육연구소의 존 프라이어는 “2010년도 실업률은 서베이를 시작한 1985년 이래 최고수준 이었다”며 “이는 부모의 실직을 체험한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학비융자를 받는 학생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불황의 늪이 깊어지자 대학 진학을 확정지은 청소년들은 서머잡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4년 후의 예고편을 본 듯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프라이어는 “대학 신입생들의 정신건강이 왜 악화됐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서베이에서 고교 4학년 당시 대학 진학과 관련해 중압감에 시달렸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2009년의 27%에서 2010년에는 29%로 상승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성별에 따라 유난히 큰 격차를 보였다. 대학 입학 후 상담을 요청한 학생들 가운데 여대생이 무려 60% 이상을 차지했다.
입실랜티 소재 이스턴 미시간대의 카운슬링 서비스 코디네이터 페리 프랜시스는 “남학생들의 경우 재물파손을 비롯해 무언가 파괴적이거나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지만 여학생들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말했다. 남학생처럼 외부로 쏟아내는 게 아니라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UCLA 교육학 교수로 신입생 서베이 담당 디렉터였던 린다 삭스는 정신건강 웰빙에 관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간극이 서베이 질문 항목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여성과 남성은 레저시간 활용방식에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삭스 교수는 남성의 경우 운동과 스포츠 등 스트레스를 털어내기 위한 여가활동에 많은 시간을 활용한다. 반면 여성은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든지 가정 일을 돕는 등 남성에 비해 보다 많은 책임을 지려든다.
교수와의 상호관계도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여학생의 정신건강은 교수들이 자신을 어떻게 취급한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접촉의 빈도보다는 교수들이 자신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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