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부 병원, 적극 권유…시장규모 갈수록 커져
▶ 연 이율 23%에 연체 땐 징벌금리 33% 달하지만 치과 치료 등 절실한 고령환자들“일단 쓰고보자” 소셜연금이 주 수입인데…결국 죽을 때까지 갚아야
패트리샤 개논(78)은 최근‘부분 틀니’를 했다. 치과 의사로부터 틀니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70여년동안 줄기차게 사용해온 치아가 노화현상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동차처럼 사람의 몸도‘마일리지’가 쌓이면 여기저기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정작 그녀를 놀래고 걱정스럽게 만든 것은 무더기로 망가진 이빨이 아니라 5,700달러에 달하는‘수선 경비’였다.
치과 의사가 뽑아준 견적서를 보는 순간 개논은 남은 생을 잇몸으로 버틸 각오를 했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없는 자’의 체념적 철학이었다.
고정 수입이라곤 소셜시큐리티 은퇴연금밖에 없는 그녀에게 5,700달러는 ‘부담불가’의 거금이었다. 의료보험이 있긴 했지만 치과 커버리지는 실질적 도움이 안 되는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했다. 달리 돈을 변통할 곳도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눈치 빠르게 개논의 속마음을 읽은 치과의사 사무실 매니저는 즉석에서 그녀에게 치료비를 대출해줄 금융업체를 소개시켜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개인 재정상태에 대한 정보만 일러주면 매니저가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 주는 것은 물론 곧바로 대출심사 결과를 알려준다는 말에 개논의 귀가 번쩍 뜨였다.
형편없이 망가진 치아 때문에 음식조차 제대로 씹기 힘든 판에 병원 측에서 융자까지 알선해주며 치료를 해주겠다니 그녀로선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 해법처럼 보였던 특별 대출은 복병이 잔뜩 숨어 있는 ‘트로이의 목마’였다. 그렇다고 달리 속임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개논은 대출금으로 치과의사인 댄 넬링거에게 치료비 전액을 선금으로 지급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포기할 뻔 했던 치료를 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일단 쓰고 보니 이자가 너무 셌다. 연 이자율이 23%였고 상환금 연체 때 적용되는 징벌금리(penalty rate)는 무려 33%에 달했다.
부분 틀니를 해 넣은 후 넬링거의 사무실 매니저는 후속치료를 위해 그녀가 원할 경우 의료 신용카드를 발급해줄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현재 개논이 지불하는 월 최저 치과 납부금은 총 214달러로 그녀가 받는 소셜시큐리티 수표의 약 3분의 1을 먹어 치우고 있다. 거기다 한 번 연체라도 하게 되면 약 50달러의 벌금을 물게 된다.
플로리다 주 두네딘에 거주하는 개논은 “내가 죽을 때까지 빚을 갚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넬링거는 뉴욕타임스의 코멘트 요청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개논의 경우처럼 보험 커버가 안 되는 치료를 받은 환자가 비용을 댈 수 있도록 자신의 사무실에서 의료 신용카드와 신용대출을 신속히 알선해 주는 헬스케어 전문가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의료 신용카드와 대출이 첫 선을 보인 것은 이미 10년 저쪽의 일이다. 당시에는 성형수술과 대기수술 등을 받은 환자들이 주된 수요층을 형성했으나 지금은 메디케어나 사설보험이 커버하지 않는 기본 진료의 비용을 자신의 쌈짓돈에서 지불해야 하는 노인들에게로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미 의학협회와 미 치과협회는 의료 신용카드에 관한 공식적인 정책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일부 시술자들은 이를 완강히 배척한다. “시술자와 환자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를 악용해 금전적 이득을 보려는 의도”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대다수의 전문의와 치과의사는 파이낸싱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한다. 물론 환자가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받도록 돕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운다.
사실 융자금은 해당 의사나 병원에 치료비로 선불로 지불되기 때문에 이들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해법이기도 하다.
의사를 중개인으로 하는 금융업이 확대되는 것은 정한 이치다 .
실제로 애틀랜타 소재 아이케어 파이낸셜(iCare Financial)은 지난 10년 사이에 가입 의료인 수가 320% 폭증했다.
하지만 의료 신용카드나 여신 제공은 늘 논란을 몰고 다닌다. 앞서도 지적했듯 가장 큰 문제는 높은 금리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6~18개월에 달하는 판촉기간에는 무이자로 제공된다. 이 기간에 대출금을 상환하면 이자 한 푼 내지 않고 빚을 정리할 수 있다. 반대로 어물어물하다 판촉기간을 넘기면 25%에서 30%에 달하는 호된 이자가 따라 붙는다.
대출금 상환이 연체되면 환자들은 벌금으로 추가 수수료룰 지불해야 하며 대부분의 경우 이자율이 자동적으로 올라간다. 이로 인해 달랑 소셜시큐리티 은퇴연금에 의지해 생활하는 환자들은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잡음이 없을 수 없다.
최근 뉴욕주 검찰은 일부 시술자들이 제너럴 일렉트릭(GE)의 단위사인 케어크레딧(CareCredit)의 의료 신용카드를 신청하도록 환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고 밝혔다.
GE외에 웰스파고와 시티뱅크 등 대형 은행들도 의료인들을 통해 환자에게 신용을 제공한다. 돈 냄새를 잘 맡는 이들이 성장 잠재력이 높은 틈새시장을 놓칠 리 없다.
나이가 들수록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 건강이다. 될 수만 있다면 “과부 땡빚을 내서라도” 예전 같지 않은 몸을 ‘정비’하고 싶어한다.
게다가 평균 수명이 크게 늘어나며 장수시대가 개막됐으니 의료 신용카드와 의료비 대출의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고령자들은 소셜시큐리티 연금이라는 고정 수입원이 있다. 케어크레딧을 비롯, 수많은 의료 신용카드 제공사가 경쟁적으로 손을 뻗치는 이유다.
‘고객’ 입장에서 제대로만 이용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아차 방심했다간 빚더미에 오를 수 있다. 노인들이 똑똑해져야 하는 시대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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