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도에서 빈번한,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범죄
▶ 셀폰으로 촬영“신고하면 인터넷에…” 협박 피해자들 수치심에 신고 않고 입 다물어 가해자 대부분 빈민“너무 심심해서 했다”
인도에서 강간은 보이지 않는 범죄다. 범인은 그들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입을 다물고, 용의자가 기소되는 경우는 드물다. 뭄바이의 샤크티 밀은 강간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도심 속 폐허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카드게임을 하고 있던 모하메드 카시 셰이크의 셀폰이 울린 시각은 정확히 오후 5시30분. 전화를 받은 셰이크는“사냥을 갈 시간”이라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사냥감이 떴다”는 셰이크의 말에 옆 자리에 앉아 있던 그의 친구도 손을 털고 따라 나섰다. 방을 빠져나가는 둘의 뒤통수를 향해 집 주인은 무얼 사냥할 것인가 큰 소리로 물었다. 도박판의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셰이크는 “예쁜 암사슴”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폐허가 된 건물에서 22세의 여성 사진작가가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녀는 그 곳에서 다섯 명의 남성에게 반복적으로 윤간을 당했다. 그 중 한 명은 셀폰으로 강간장면을 촬영했다.
피해자가 현장을 떠난 후 다섯 명의 남자는 뿔뿔이 흩어져 아내와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마침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그들은 후환 따위는 염려하지 않았다. 이전의 여러 피해자들은 수치심 때문인지 단 한 명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그들은 확신했다. 신고하면 인터넷에 비디오를 올릴 것이라는 협박은 언제나 먹혔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뭄바이 윤간사건 공판이 열린 법정은 썰렁했다. 뉴델리의 사설버스에서 발생했던 집단강간 사건 재판 당시의 열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피고인들은 맨발로 법정 뒤쪽의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모두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피고인들은 미리 입을 맞춘 듯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들이 같은 장소에서 최소한 다섯 차례에 걸쳐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인도에서 강간은 보이지 않는 범죄다. 범인은 그들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입을 다물고, 용의자가 기소되는 경우는 드물다. 강간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좀처럼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상습범인 5인조의 강간범들이 즐겨 이용한 범행장소는 뭄바이의 샤크티 밀스에 위치한 버려진 공장건물이었다. 샤크티 밀은 한때 붐을 이루었던 뭄바이의 의류산업이 무너진 후 흉물스런 폐허로 변했다.
어둠이 덮이면 뭄바이의 중앙에 자리 잡은 이곳은 쓰레기더미와 아스팔트가 벗겨져 나간 움푹 꺼진 도로, 머리에 닿을 듯 늘어진 전선, 을씨년스런 빈 건물,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서 있는 움막, 악취가 진동하는 시궁창 등이 어지러이 엉킨 쥐들의 정글로 변한다.
피해여성인 사진사와 그녀의 동료인 21세의 남성은 영자 신문사의 인턴으로 뭄바이의 버려진 건물에 대한 사진 에세이를 준비 중이었다.
지난 8월의 목요일, 이들을 덮친 5인조는 길바닥이 늘 시궁창 물로 질퍽거리는 인근의 빈민가에 거주하고 있었다.
다섯 명 가운데 정규직 근로자는 한 명도 없었다. 가끔씩 동네 닭 공장에서 털을 뽑는 일을 했지만 하루 여덟 시간 동안 악취를 견뎌내며 땀 흘려 일한 대가로 손에 쥐는 일당은 150루피, 미화 4달러에 불과했다.
패거리를 이루는 다섯은 너나없이 가난했으나 수완이 좋은 셰이크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그는 절도범이자 뭄바이 경찰의 끄나풀이었다.
무리의 막내인 열여섯 살난 소년의 할머니는 손자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도둑놈”이라며 셰이크의 집안 출입을 금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소년은 최소한 다섯 차례 ‘동네 형’들과 어울려 윤간에 가담했다.
또 한 명의 범인은 두 명의 자녀를 둔 사림 안사리(27)로 그날 ‘사냥터’ 안에 들어온 남녀를 포착한 후 셰이크에 전화를 건 장본인이었다.
이들을 비롯한 5인조에게 ‘삶의 재미’ 따윈 없었다. 지독한 가난 앞에선 산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면, 그들의 세계가 바로 지옥이었다.
한 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한 다섯 명의 도시 빈민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여성을 겁탈했다. 잃을 것이 없으니 겁날 것도 없었다.
최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6개국의 남성 1만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베이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0% 이상이 배우자가 아닌 상대와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상 강간을 했다는 뜻이다.
그 이유에 대해 73%는 “나도 재미를 볼 자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59%는 “너무 심심해서”라고 대답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랜셋 글로벌 헬스 저널’ 9월호에 게재됐다.
지난 1970년대 이후 주로 강간 케이스의 변론을 맡아온 뭄바이의 여성 변호사 플라비아 아그네스는 인도의 경우 빈민층 남성 사이에서 성범죄 발생률이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들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달리 유흥을 즐길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건담당 검사인 로이는 가난을 이유로 범죄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다섯 명을 개인적으로 취조해 본 결과 모두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이자 약탈자, 일탈자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들이 자랑하듯 술술 털어놓은 범행사실은 열혈 검사를 격분시키기에 족했다.
강성 판사의 공분에도 불구하고 재판정의 공기는 썰렁했다.
반면 외부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5명의 강간범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사림 안사리의 부인 샤흐자난 안사리는 낯선 사람이 문 앞에 나타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사림이 체포된 후 안사리의 가족을 철저히 따돌렸다.
안사리는 자녀들을 이웃의 눈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예정이다. “아이들은 훌륭하게 크기를 원한다”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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