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인운전, 안전위협 어느 정도인가
▶ 과속·음주·텍스팅 없어…사고율 중년 운전자와 비슷, 나이 기준보다 운전기능·유연성 등 잦은 테스트 필요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으로 공인되는 나이는 몇살인가. 딱히 법적 기준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대략 65세면 어디서건 ‘어르신’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에 상관없이 ‘노인’에 대한 기준에는 상당한 주관적 편차가 따른다. 55세에 맥도널드의 시니어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70세를 넘겼어도 정정한 ‘백발 청년’이 있을 수 있고, 60세에 마음이 벌써 ‘노인정’에 머무는 ‘조로형’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믿음으로 무장한 혈기방장한 노익장이라 하더라도 “이젠 나도 늙었다”는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닥친다.
자동차 키를 자진 반납하거나 압수당할 때가 바로 그 시점이다.
노인들에게 자동차 키를 빼앗긴다는 것은 독립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젠 누군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옹색한 신세라는 뜻이다.
제아무리 “난 아직도 젊다”며 스스로를 나이를 부정하려 들어도 몸까지 속이지는 못한다.
로버트 쿨런(80)에게도 어김없이 그 순간이 닥쳤다. 신경계에 약간의 이상을 지닌 그는 발이 저려 워커에 의지해 걷는다. 하지만 그는 운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신한다. 물론 장성한 여섯 자녀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괜찮다고 우겨도 자녀들은 “더 이상은 무리”라며 그의 자존심에 찬물을 끼얹는다. “사고라도 내면 어쩌겠느냐”는 자녀들의 비난기 어린 퉁생이에 쿨런도 달리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자동차 키를 내놓기는 싫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운전능력 평가였다.
뉴욕주 알바니에 거주하는 그는 운전재활 전문가에게 직접 테스트를 받은 후 결과를 보고 자동차 열쇠의 반납 여부를 결정하기로 자녀들과 합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 쿨런은 열쇠를 지켜냈다. 쿨런의 옆자리에 동승한 여성 전문가는 그가 저린 발을 제대로 사용하는지, 반사신경에 문제는 없는지, 어깨와 목의 운동반경은 적정한지 등을 꼼꼼히 관찰했다.
운전대를 계속 잡아도 좋다는 ‘합격 통보’에 쿨런은 세월의 무게를 훌훌 털어낸 듯한 홀가분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자녀들도 더는 어쩌지 못한 채 전문가의 판정에 굴복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쿨런과 같은 고령 운전자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전국 고속도로교통안전청(NHTSA)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65세를 넘긴 운전자가 무려 3,500만명에 달한다.
이 같은 수치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이유는 나이든 운전자들이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뿌리 깊은 ‘편견’이 작동하는 탓이다.
그러나 노인 운전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모른 척 외면한 채 자동차 키를 빼앗아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하드포드 보험사의 노인학 전문가이자 ‘센터 포 머추어 마켓 엑셀런스’ 국장인 조디 올셰브스키는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우리의 사고 역시 진화 중”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의 운전 포기, 혹은 자동차 열쇠 압수를 단순히 ‘드라이버로부터 패신저로의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들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운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사고의 변화가 일고 있다는 얘기다.
NHTSA의 통계를 들여다보면 노인 운전자들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깰 수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사고율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니다.
미 자동차협회(AAA) 대변인 샤론 길마틴은 사망과 연결된 치명적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는 연령층은 10대와 75세 이상 그룹이다.
65세에서 70세까지의 사고율은 중년층 운전자들의 평균 사고율과 유사하다. 사실상 나이든 드라이버는 오히려 안전운전을 하는 경향이 높다. 과속, 음주운전, 운전 중 텍스트 주고받기 등을 하는 노인들은 거의 없다.
치명적 사고율이 높아지는 것은 75세부터이고, 80세를 넘어서면서 상승곡선이 가팔라진다. 나이든 운전자가 사고를 부쩍 자주 일으켜서가 아니라 몸이 약해진 데다 심각한 부상에서 회복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 운전자가 일으키는 치명적 사고의 피해자가 주로 상대방인데 반면 노인 운전자가 야기한 사고의 사망자는 대부분 본인이다.
AAA 대변인 길마틴은 “운전이란 기능적 능력의 문제이지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며 “따라서 옆자리에 앉기가 불안스러운 50세 운전자가 있는 반면 완벽한 운전을 하는 95세 드라이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운전능력은 나이만을 기준으로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미 전역 50개 주 가운데 고령 운전자들의 주행 테스트를 요구하는 곳은 일리노이주가 유일하다. 반면 많은 주는 70세 이상 운전자의 경우 면허증 갱신을 할 때 온라인이나 우편을 이용하는 대신 본인이 직접 DMV를 방문할 것을 요구한다.
또 다른 일부 주는 나이가 많은 운전자의 면허증 유효기간을 단축해 필기시험과 시력검사를 자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길마틴은 노인들에 대한 주행 테스트를 지지하지 않는다. 도로안전 개선효과가 거의 없는데 비해 노인 운전자들에 가해지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이 때문에 아예 운전을 포기하는 고령자들도 적지 않다.
노인들이 운전을 보다 안전하게 하고 자동차 키를 되도록 오랫동안 방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올셰브스키 몇 가지 운동을 권장한다.
예를 들어 차선변경 때 머리를 돌려 옆 차선을 살피는 간단한 동작도 나이가 들면 어려워진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사고가 발생위험이 높아진다. 하트포드 보험사와 MIT 공과대학원 산하인 테크놀러지 에이지랩은 목과 어깨의 유연성을 높여주는 체조를 온라인 비디오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테크놀러지도 나이든 운전자들을 지원한다.
이미 일부 자동차는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경고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다. 블라인드 스팟은 사이드 미러에 잡히지 않고, 운전자의 눈길이 닿지 않는 시각의 사각지대를 뜻한다.
이보다 나이든 드라이버에게 더 유용한 테크놀러지는 ‘스마트 헤드라이트’(smart headlight)이다. 스마트 헤드라이트는 밤눈(night vision)개선을 위해 전조등의 불빛 강도와 범위를 자동적으로 조정해 준다.
충돌을 막아주는 테크놀러지도 시장에 나온 상태다. NHTSA에 따르면 충돌방지 테크놀러지는 뒤쪽에서 다가오는 장애물이나 차 앞에 멈춰선 물체를 불빛과 경고음으로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일부 모델은 운전자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스스로 차량 속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차량이 차선을 벗어날 경우 경고음을 울리는 차선이탈 경고장치도 이미 개발됐다.
이처럼 운전의 안전성을 높여주는 옵션이 연이어 선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NHTSA는 안정성 평가에 나이든 운전자와 동승자 보호항목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노인들을 운전능력 지원 장치는 그러나 ‘양날의 칼’이다. 전문가들은 노인 운전자들을 도와주는 테크놀러지가 유용하고 효과적이긴 하지만 맹목적인 의존은 오히려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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