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를 때, 너무나 힘들어 헐떡이며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지? 하고 자문할 때가 있다. 그러다 정상에 오르면 저절로 허리가 펴지며 야호!, 소리가 난다.새해를 맞으며 제일 먼저 나온 소리가 야호! 였다. 참 힘들었다. 석주면 발딱 일어나 쌩쌩 다닐 줄 알았다. 밥 먹기는 힘들어 죽겠는데 왜 하느님은 꼭 세끼를 먹게 만들어 놓으신 거야, 불평을 해대며 꼬박 두달을 누어 있었다. 마지막 팡파레는 온 식구가 사이좋게 힘을 함쳐 끝내줬다. 우선 손주가 시작을 했는데 로마 광장앞의 분수 만큼이나 시원스레 다섯번을 토하고 집의 이불 이란 이불에는 다 토해놓고 하루종일 세탁기를 돌기게 하더니 다음은 며느리, 남편, 마지막으로 아들은 병원 응급실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새게 만들었다. 신주단지처럼 모셔 누어있던 내가 졸지에 우람한 팔뚝을 자랑하는 간병인으로 변해야 했다. 지난 수년간, 나는 의사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사람이라 엔간한 의사들은 내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하는데 하늘이 도우사 드디어 젊고 잘생기고 실력있고 게다가 선배이며 교우인 분의 조카라는 의사분을 만나 수년간 미루던 수술을 한 후였다.‘열어 보니까 엉망이더라고요. 아프셨겠어요.’ 의사의 이 한마디에 그냥 의사 가운을 붙잡고 엉엉 울고 싶었다.
아무튼 한 고개 넘어가고 두 고개 넘어가며 그렇게 간다. 손주가 토하면서 시집올 때 엄마가 해준, 수십 년간 버릴 수도 없고 달리 어찌 할길도 없어 매트리스 패드 대신 깔았던 이불이 엉망이 됐다. 옛날 솜이라 솜틀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미련없이 자신의 쓰일 곳에 다 쓰인 후 드디어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엄마가 오래 아파 누워있던 그 겨울이 생각난다. 모르는 분이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해 주었다. 엄마가 많이 오래 아프시다고, 한번 와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오죽 보기 딱했으면 남의 일에 그리 나서랴, 당연히 가봐야지, 하고 엄마에게 가서 두어 주 있은 적이 있다. 엄마는 얇은 조각이불을 덮고 계셨다. 워낙 솜씨도 좋고 물건도 아끼시는 엄마가 한조각 한조각 헌 옷이며 짜투리 헝겊을 모아 만든 이불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감촉이 좋고 착착 감기는지 정말 그렇게 가볍고 포근한 이불은 본적이 없었다. 엄마는 그 이불을 만지작, 만지작 하면서 작은 소리로 ‘이 이불 감촉이 참 좋지?’ 하셨다. 엄마는 그 이불을 나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다. 엄마의 그 맘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내가 어떻게 엄마가 덮고 계신 이불을 걷어들고 올수 있으랴.
그 후, 엄마의 유품은 가까이 모시던 언니가 정리를 했겠지만 그 이불 이야기는 없다. 낡고 어느 한 조각 똑 같은 것이 없는, 엄마의 손바느질이 한땀 한땀 만들어내고 세월속에 낡아 덧대고 꼬매고 이어 붙인 그 이불. 추억때문 만이 아니라도 세월이 삭혀 낸 그 이불은 너무 예뻐서 플락시글라스의 프레임을 입혀 어느 뮤지움 걸어 엄마, 라든가 세월, 혹은 유산 같은 식의 제목으로 걸아두면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베드’ 못지 않는 훌륭한 예술품 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도저히 나를 이해 할 수 없어하셨다. 조금만 하면 될텐데 때려도 안되고 벌세워도 안되고.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던 아이를 키우며 엄마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내가 엄마 띨노릇 하기 힘겨웠던 만큼 엄마도 엄마노릇이 힘들었을 것이다. 나중에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되자 엄마는 자신이 너무 몰라서 내게 필요한 것을 주지 못했노라고 늘 미안해 하셨다. 날 시집 보내며 날아갈듯 홀가분했을 울 엄마. 그 엄마가 해 준 이불을 손주녀석의 토사물과 함께 뭉쳐 버란다. 흙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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