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전, 숟가락 하나라도 덜어줘야 할 처지에 놓여있을 때 나는 원조 백수가 됐다. 그 때 천사처럼 나타나 친구도 되주고 제형에다 나를 팔아 넘겨준 게 시동생이다. 그러면서 형은 착실은 하지만 꼬장 꼬장해 여자 호강 시켜줄 위인은 못된다며, 그러나 호강은 자신이 시켜주겠노라고 큰소리 쳤었다.

이제는 제 코가 열자라며 얄짤없이 잡아떼는 시동생에게 나는 만날 때마다 언제 호강 시켜줄꺼냐고 짖궂게 물고 늘어진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카는 쪼끔만 기다리면 자기가 아빠 대신 큰엄마 호강 시켜 드리겠노라, 하고 그 옆에 있던 동서는 이 집 남자들이 대를 물려 사기를 친다고 하며 모두 또한바탕 웃는다. 조카는 나와는 피 한방울 안섞인 사이인데 내겐 피붙이 이상으로 소중한 아이다. 그 아이는 한국에서 우리집에 와 마침 몇 달 차이로 동갑이 작은 애하고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다.

마침 작은 애는 레슬링부의 단장이어서 사촌을 끌고 들어가 함께 붙기도 하고 때로는 골리고 때로는 한편이 되기도 하며 지냈다. 그 시절엔 이즈음처럼 비자문제가 까다롭지 않아 집안 사정 때문에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한 걸로 입학이 허가됐었다. 아무튼 너는 우리 집에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온 애니까 네가 막내라고 이름 붙여 줘 지금도 그 애는 우리 막내로 불린다.

사실 한국에서 보낼 땐 학교에서 그리 썩 뛰어나지 못해 보낸건데 이 애는 진짜 학자다. 이 조카를 통해 나는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인류학, 사회 문학, 자연현상과 동물의 세계에 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도 내게 올 때는 늘 좋은 클라식음악을 CD로 구워 오고 좋은 양서를 가져온다. 문학만의 좁은 시야를 넓게 만들어 줬다.

대학을 나와 남들은 평생 직장으로 삼아도 좋을 쟙을 갖었는데 재미없다고 일 이년간, 허리를졸라매며 학자금 상환을 하더니영국으로 갔다.

큰엄마, 큰엄마는 런던에 꼭 오셔야 해요. 박물관이 기막혀요.

하는 이멜을 보내기도 하며 계속 공부만 한다. 그 애의 통찰력이 찍어내는 아주 민감한 문화의 차이라던가 켜켜로 벗겨내도풀수 없는 인간 본성의 모순, 사회의 웃기는 부조리 등을 말하면 나는 재미있어 넘어간다. 어느 누구도 그 아이와의 시간보다 더 재미있지 않다. 그런데 사람의 관심은 여러 곳으로 분산될수 없는 건지 여자를 녹이는 재주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다 체격도 왜소하고 인물도 그저 순하게 생겼을 뿐 소위 섹쉬해 뵈는것과는 거리가 멀어 은근히 걱정을했는데 드디어 장가 를간단다. 끼리끼리 만난다고 케임브리지에서 박사 공부를 하는 영국애인데 인사를 왔다. 키는 조카보다머리 하나는 더 크고 예쁜 게 내눈에는 잉그릿드 버그만 같다. 라틴어를 비롯해 서너 가지 언어를하고 조카를 만난 후는 한국어를배우겠다고 나서서 벌써 제법 몇마디 한다.

장인 될 분은 교수인데 딸보고네 신랑은 학자니까 돈없다, 다이야 반지 해달라고 하지 마라, 했단다. 내가 너무 좋아 어쩌다 저런 애를 만났냐고 했더니 조카는 싱글싱글 웃으며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제가 한번굴렀나 봐요.,한다.

그런데 케임브리지 박사라니까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오랑우탕 연구하려 보르네오 원시림으로 간 베루떼라는 여자도, 고릴라와 침판치를 연구하러 아프리카 같은 오지로 간 제인과 다이안도 다 케임브리지 박사 출신이다. 조카 며느리 될 아이도 무슨 민족의 어원을 찾는 공부를 한다던데 행여나 그 귀한 내 조카를 오지로 끌고 갈까 겁난다.

그나저나 시동생이 호강 시켜주겠다던 약속은 결국 지켜졌다.

말 통하는 조카를 낳아줬는데 그보다 더 큰 호강이 어디 있으랴.

결혼식 덕에 드디어 런던은 가게 생겼는데 비행기값은 왜 이리 비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