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특별한 용도의 바지가 한 벌 있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측정용 바지’ 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이 바지는 어디까지나 외출용이 아닌, 집안에서만 그것도 잠깐 입어 보는 바지로, 살이 얼마나 쪘는지 빠졌는지를 가늠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대학시절부터 입어온 바지라 사실 아이 둘의 엄마가 된 지금 입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어 입어본 지가 꽤 되었다. 그런데 얼마전 옷장을 정리하다가 이 측정용 바지가 눈에 띄어 입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입는다는 표현보다는 내 몸을 바지에 구겨 넣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 정도로 바지는 타이트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입어 보려는 생각에 나는 바지를 치켜잡고 폴짝폴짝 방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혼자서 깔깔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바지가 더 이상 맞지 않으면 맞는 바지를 하나 사면 그만이다. 굳이 맞지도 않는 작은 바지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하는 노력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왜냐하면 나를 바지 안에 끼워 맞추기 위해 내가 희생해야 하는 가치는 현재 내 몸에 대한 만족, 내 몸에 대한 감사 등으로, 바지에 나를 끼워 맞춰보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손상될 필요가 없었던 내 몸에 대한 긍정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처럼 정해진 틀 안에 나를 맞춰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내 모습 중 이 모습은 수정하고, 저 모습은 잘라내고, 또 다른 모습은 더해서 외부에서 정해놓은 틀 안에 조금 더 정확하게 나 자신을 맞춰 넣기 위한 노력을 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그럴 때면 쉽지 않겠지만, 의식적으로 내가 정하지 않은 그 틀 안에 내 자신을 맞춰넣으려는 노력 때문에 희생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래본다. 또 정해진 틀 안에 내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노력 때문에 무기력해지고 외로워지고 불편해지고 초라해지는 느낌이 든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이 나 자신의 만족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외부의 시선을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래본다. 내가 바라는 나는 내 몸에 맞지 않는 작은 바지에 맞춰 나를 바꿔나가는 내가 아닌, 큰 바지를 입고도 지금 행복해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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