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늘 새로운 하루를 기쁨으로 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밤사이 휴식 같은 단잠을 자고 난 아침이면 늘 새롭게 충전된 에너지를 느낀다. 살면서 농담이라도 자주 하지 않는 말이 있는데 "죽을 뻔했어!"라는 말이다. 두 번씩이나 충격적인 사건을 진지하게 겪은 나로서는 언제나 ‘오늘’이 너무나 소중하고 오늘의 끝도, 내일의 처음도 항상 감격스럽다.
중1 여름 방학, 일영이라는 곳으로 수련회를 갔을 때, 수영을 못하는 나는 꽤 예쁜 수영복에 모자를 쓰고 까불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허리춤까지 차던 강물이 순식간에 내 키를 넘어 발바닥을 붕 뜨게 했고, 놀란 나는 물속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며 죽는구나 했다. 언니의 손에 잡혀 뭍으로 나온 나는 기절. 어른들의 도움으로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때의 공포는 수영하지 못하는 나를 있게 했고, 죽을 뻔한 최초의 기억으로 물을 볼 때마다 나의 강심장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2002년의 겨울, 장대비가 하얗게 쏟아지던 날 85하이웨이에서 영화의 장면 같은 사고를 만났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면서 뱅뱅 도는데, 살면서 그때처럼 정신이 맑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어딘가에 부딪혀 멈춰야 하는 십여 초 정도의 긴박한 상황에서 또렷이 드는 생각. "남편을 부탁해요! 아무도 나랑 부딪치지 않게 해줘요." 간절히 바라며 "쿵!" 사고 목격을 한 신사는 백곰 같은 큰 차가 춤을 추듯이 두 바퀴 반을 돌았다고 한다.
이튿날 나는 가방을 찾으러 공업사로 가서 반쪽으로 찌그러진 내 차를 보며 "헉! 누군가 죽었.."했다. 그 누군가는 바로 나. 두 번이나 ‘죽을 뻔’의 통로를 빠져나온 나는 습관처럼 하루살이를 되뇌게 되었다. 기적처럼 차는 죽고 나는 살았으므로. 하루살이라는 말이 좋아진 배경이다. 종종 하루를 날아다니며 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유충으로 긴 시간을 지내고 딱 하루를 산다는 ‘하루살이 벌레’를 생각한다. 사건 이후 수천 번의 하루가 있었지만, 꽉 채워 알뜰히 살지 못한 날들이 빈번히 나를 몰아세운다. 너 지금 잘살고 있느냐고. 언제인가 하루살이를 접어야 하는 시간이 될 때까지 남은 시간에 존중과 감사를 다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나는 내일을 오늘에 살지 않는 하루하루살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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