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한.미 해외금융계좌 납세법 시행 앞두고 문의 빗발
이달 초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던 장모(73·뉴저지 포트리 거주) 할아버지는 요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지 여부를 놓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장 할아버지가 변호사를 찾은 건 한미 양국의 합의로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해외금융계좌납세법(FATCA)’ 때문.
장 할아버지의 한국내 재산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현금과 부동산 등 약 180만 달러. 만약 이 재산들이 FATCA 시행으로 드러날 경우 지난 8년간 미국정부에 이 재산을 신고하지 않은 장 할아버지는 자칫 수십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된다. 장 할아버지는 “그 어마 어마한 돈을 벌금으로 낼 바에야 차라리 한국에 가서 마음 편하게 살자는 마음이 들다가도, 또 한 편으론 자식들과 손주들이 있는 미국을 떠난다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 고민스럽다”며 하소연했다.
이처럼 FATCA의 본격적 시행이 다가오면서 갈수록 ‘미시민권이나 영주권 포기’ 문제를 놓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한인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할아버지처럼 한국 금융회사에 재산을 예치해두고 있으면서도 지난 수년간 미국 세무당국에 단 한 번도 신고를 하지 않은 한인 납세자들이 대부분으로 자칫 한꺼번에 거액의 벌금이나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섞인 모습이 역력하다는 전언이다. 일부 한인들은 이같은 문제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하고 역이민까지 심각히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 세무당국은 그간 여러 제도를 시행하면서 한국 등 해외에 예치된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 보고를 유도해왔다. 그러나 해외금융정보는 자진신고 전에는 사실상 확인이 불가능해 대부분 무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FATCA 시행으로 은닉재산의 적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당장 관련 한인 납세자들의 발에 불똥이 떨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해외에 1만 달러 이상 예치해 둔 납세자들의 신고를 의무화하고 있는 해외계좌신고제(FBAR)를 어길 경우 벌금으로 계좌당 최소 1만 달러에서 최대 미신고 은행잔고 금액의 50%를 지불토록 규정하고 있으며, 케이스에 따라 심하면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문제는 FATCA로 숨겨져 있던 한국내 금융계좌가 드러날 경우 뾰족한 회피수단도 없다는 것이다. 미 정부는 부동산을 포함한 미신고해외계좌를 자진 신고하도록 한 OVDP를 해결수단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OVDP도 형사처벌만 면제해 줄 뿐 최근 8년 중 가장 높았던 예금액의 27.5%를 벌금으로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관련 정홍균 변호사는 “최근 한국에 예치해둔 재산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며 “시민권 포기를 고민하는 사람들 중엔 미국 내 자산이 200만 달러 이상의 시민권자에게 부과되는 ‘국적포기세’ 때문에 오히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FATCA 시행에 맞춰 피해를 우려하는 또 다른 부류는 한국에 거주하는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들이다. 한국에서 모든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미국 납세의무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재산이 공개돼 멀쩡한 재산을 세금으로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한인 이모(37)씨는 시민권자이지만 대학 졸업 후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연방국세청(IRS)에 소득을 보고한 적이 없다. 아직 IRS가 이씨와 같은 납세자들에게 어떤 잣대와 규정을 들이댈지 명확한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이씨는 불안하기만 하다. 이씨는 “이제 와서 갑자기 돈을 내놓으라고 할까봐 시민권 포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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