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의 가르침이 부실해서이겠으나 어려선 복사도 서던 아들들이 이제는 성당엘 안다닌다. 말을 물가로 끌어갈 수는 있으나 물을 마시게 할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저 틈틈히 기도 할 따름이다. 얘야, 살아보니 믿을 건 하느님밖에 없더구나. 물론 뼈속까지 스미는 한기를 옆 사람의 온기가 잠시 녹여주기는 하다만 그것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이들의 부축이 힘되는 거지 도운답시고 이 길로 가고 싶은 나를 억지로 저길로 끌고 가는, 사람의 지혜는 한계가 있더구나.. 늙은 이 티 내며 속으로 구시렁 거릴 뿐. 최근 일이다. 책상 한 구석에 놓여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을 유심히 들여다 보던 손자가 할머니,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 한다. 아니, 참 좋으신 분이란다. 그런데 왜 저렇게 벗고 매달려 있어? 내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멍하니 있는 동안, 손자는 십자가상의 예수상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더니 혼잣말처럼, 아프겠다... 춥겠다...챙피 하겠다... 한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너도 원죄라는 게 있는 죄인이라고. 네 눈엔 천사처럼 보이는 이 할미가 실은 못된 죄인이라고, 그래서 이 할미나 너를 위해 예수님이 대신 저런 지경에 빠지게 된거라고, 그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 손자는 종종 내가 대답 할 말이 없는 질문을 곧잘 한다. 설명할 줄 길을 알지 못해 나는 혼자 어물어물 거리다가 마음속으로 자꾸 그 질문을 곱씹어 보게 된다. 정말 예수님은 왜 그런 모멸과 고통과 죽음을 거쳤어야 했을까. 정말 오로지 그 길밖에 없었던 걸까? 살다보니 어느 새 예까지 왔는데 살아 볼수록 산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의 돈과 권력의 위력이 너무 크고 인간들의 욕심은 끝간데 없다. 특히 이 동네는 아이티 산업의 메카라고 하룻밤 새에 백만장자, 천만장자가 되는 젊은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기세등등 몰려다니는데 보고있는 나는 혼자 조마조마하다. 저 애들이 사람 소중함을 알까? 저 애들이 남의 아픔을 알까? 저 애들이 인생의 무상함을 알까? 저 애들이 우리 하나 하나가 그 수만 년속의 작은 모래알에 지나지 않음을 알까? 성령 충만해 돌풍같은 은사의 구름타고 승승장구하던 목사의 아들도도 온갖 스캔들로 얼룩지고 추락하며, 무저항, 무폭력 사상으로 거의 성자 수준까지 오른 간디의 아들도, 또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수 있는 것이면 못살 것이 없던 재벌의 아이들도 자살을 했다.
사순절이라고 우리 본당 신부님은 수염을 안깎고 계신다. 아마 단식, 금육도 엄청 하시는 모양으로 피로하고 추레해 보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멋있게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젠 늙은 이라고 그런 거 안해도 된단다. 그런데 어떤 자매님은 아주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사순기간동안 저녁을 안먹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나보고 사순절동안 무슨 계획이 있냐고 묻기에 입속으로 우물거리며 밥은 쪼끔 적게 먹기로 하고(이젠 많이 먹지도 못한다.) 씹기는 엄청 오래 씹기로 하고(그래야 소화가 된다.) 말은 쪼끔 덜 하기로 하고(아무리 말해봤자 내 말 듣는 사람을 못봤다.) 듣기는 쪼끔 더 듣기로 하고(대답 안하면 속 편하다.)... 치과에 갔더니 내 입속을 들여다보던 치과 의사말이 입속을 보면 건강상태가 보이는데 나는 고생은 많이 하겠지만 살기는 오래 살거란다. 아이구, 하느님. 제발.. 아직 보속할 게 한참 많은 모양이네요. 결국 들여다보면 사랑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으스대며 살고 싶어서 얻게 된 얼룩인데 예수님 입장 생각해서 좀 봐주시면 안돼요?하도 수명이 길어진 세상이어서 이젠 장수하겠다는 말이 겁먹으라는 소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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