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고국으로 돌아간 것은 1960년 6월 중순이였다. 4.19혁명이 나고 두달이 채 못 된 때라 서울시가에는 젊은 학생들이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윤보선대통령 그리고 장면 국무총리집권의 민주정부와 새로 시작된양원 제도의 혼란 속에 태평로거리는 매일 시민들의 데모로혼잡을 이루었다. 선거를 통해당선된 초대민선 시장 김상돈 씨는 시공관에서 취임식을 마치고수백명의 지지시민들을 이끌고시장실로 입성 하였다.
하기야 매일 장애인들, 마차를끌고 나온 달구지들, 남녀 노소할것없이 이루 셀 수없는 수많은 데모대원들이 줄을 이어가고있었다.
박정희 장군이 주도하는 5 인헉명 위원회는 다음해 1961 년5 월 16일 새벽을 기해 한강을건녀 서울로 진입 서울중앙방송국을 접수하고 잠자고 있던 박종세 아나운서를 깨워 혁명공약을 낭독하게 하며 구데타를 성공하기에 이른다.
반혁명군이 양주에 있는 모부대에서 모의하고 있다는 정보에 박장군은 공병 출신 윤태일장군을 유선 전화를 가설해 가며 연락하고 진압하려고 부대에 도착하니 참모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혁명을 찬성, 박장군에게 보고하니 즉각 서울시장으로부임하라는 명을 받고 시장으로부임한다.
16 명의 비서들을 이끌고 있던 민선시장은 문전박대를 당하고 의전을 맡고 있던 박종영 과여고생급사 만이 들어갈 수가있었다.
작업복 군복에 두 개의 별을단 윤시장님 왈. “Mr. 박 나하고 일 좀 할 수 있겠소?” 하신다.
네, 각하가 필요하시다면 기꺼히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시장실에 부설된 고물 AirConditioner 를 보더니 이 사치스러운 기계는 당장 철거 하시오하신다. 나는 즉각 각하, 이는 우리 시장님을 방문하시는 외국의국빈들을 위해 설치한 것입니다,하니 아무튼 당장 철거하라는말씀이라 수위장을 불러 철거하였다.
며칠 후 최고회의에 다녀오신시장님이 나를 부르신다. “최고회의에 갔더니 젊은 장교들 (주로 대령급이 많았다)이 버젓이Air Con 들을 켜놓고들 있더라는 말씀. 곧바로 수위장을 불러다시 설치해 드렸다.
하루는 외빈이 오신다고 서울시를 대표하여 행운의 열쇠를증정하려고 나가시는 시장님을위하여 서울시의 로고가 부착된유일한 세단을 시청정문 앞에운전병과 함께 대기시켜 놓고기다렸다. 군복의 시장님이 차를당장 차고에 넣고 나의 군용 짚차를 갖고 오라는 명에 할 수없이 빨간 판에 벌 둘이 달린 차를 대령하였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교통을통제하는 헌병, 젊은 최고위원님들이 타신 세단은 귀빈용 주차장으로 손 신호로 보내며 별 둘을 부착한 짚차에는 경례만 하고는 일반 주차장을 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장군님시장은 하차후 한참을 걸어서 환영대 쪽으로 가시고 젊은 대령 최고위원님들은 몇 발걸음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우리시장님 얼굴모습이 그리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나는 행사가 끝나고 시청으로돌아오는 길에 시장님께 아뢴다.
각하, 별 권위와 의전 절차는 좀차이가 있으니 앞으로는 저의건의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 후로는 시장님과 나의 사이는 무척이나 가까워져서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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