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찾아왔다. 마당에 녹색의 빛을 발하는 잔디조차도 봄을 뿜어댄다. 멀지 않은 야외 벌판에서는 들꽃들이 한창 봄빛을 자랑하고 있다. 눈부신 원색의 꽃 잔치가 벌어졌다. 들꽃들이 나타난 것이다. 광활한 황토는 촘촘히 뿌려 놓은 들꽃으로 널따란 눈부신 초원으로 바뀌었다. 새빨강, 샛노랑 그리고 새하얀 물감을 들여놓은 옷감처럼 물에 헹구면 빨래에서 짜낸 진홍빛이, 노란빛이, 옥색과 흰색이 줄줄 흘러내릴 것 만 같다. 원색이 태양빛을 받아 내어 그 반사에 눈을 부시게 한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눈을 아프게 한다. 아니, 벅찬 가슴에 심장도 뛰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들꽃이 너무 아름다워 한웅큼 파다가 집 마당에 옮겨 놓았다. 매일 정성들여 거름과 물을 주며 길렀으나 죽어버렸다. 들꽃의 삶은 오직 들판에서만 존재한다. 이들은 장미나 백합이 아니다. 들꽃들의 생명력은 거친 바람 속에서 길러진다. 휘날려오는 황토 흙과 뜨거운 태양 볕 속에서 고개를 쳐들고 활짝 햇볕을 흠뻑 받아내 생명의 꽃을 피운다. 장미나 백합의 향내를 뿜지 않는다. 무취의 냄새로서 찰나의 매혹에 연연해하지 않는 꽃들일 뿐이다. 단지 뺨을 스치는 향기로운 바람도 맛보고 바람의 생명기운도 받는다. 개개의 이름도, 어떤 돌출의 개성도 필요치 않는다. 그저 같이 어우러져서야만 하나의 조화로서 공간에 충만함을 채워 낼 뿐이다. 이들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채운다.
일년을 차가운 땅 속 어두움에서 기다리며 추위를 이겨내고 봄에 비었던 공간들을 눈이 부시도록 채워버린다. 짧은 동안 펼치는, 꽃의 향연이다. 창공의 새들과 바람 속, 달빛 속에 이웃 꽃들과의 끝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넓은 들판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은 생의 기쁨을 나타내는 웅대한 관현악이며 미묘한 교향악처럼 울린다. 더 나아가 바람 소리가 곁들려오는 첼로의 음률로 우리의 영혼 깊게 파고들어 가슴을 적신다.
원색으로만 강열하게 채색된 반 고흐의 또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다. 그러나 멋있는 전람회장이나, 잘 가꾸어진 화단, 혹은 화려한 값비싼 화병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니 그들에게는 필요치 않다 우리에게 입장권도 요구하지 않는다. 2-3주가 지나면 그들의 색깔의 잔치는 차가운 밤하늘에 고개 숙이고 내년을 기약하며 들어가 버린다.
또다시 만날 수 있다는 약속. 다시 찾아올 그들의 잔치를 기다릴 뿐. 기다림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 버리는 그들…자기의 이름을 내세우지도 않고 주변과 어우러져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들꽃들을 보면서 우리의 주변 생활 속에도, 아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여러 단체들도 둘꽃 같은 마음가짐으로만 봉사한다면 아무런 다툼도 없이 옆에서 보기에도 흐뭇한 단체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풍요의 원천이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먼저 바깥의 풍요를 내부에서 느끼고 알아채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서 더 할 나위 없이 작아 보이는 것, 가장 가벼운 것, 그리고 가치가 미미해 보이는 것 등에서도 우리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주위와 어울린 합창이다. 봄 들판을 찾아 나가보면 안다. 텅 비었던 벌판을 눈부시게 채우고 있는 들꽃들이 모든 것을 체념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왔을 때 조용히 사라지며 다음을 기다리는 순응의 자세에서 생활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직접 보고 느껴야겠다. 그들의 눈부신 아름다움 속에서 조용히 눈도 감아 보겠다. 고통에 동화하는 타고난 마음 됨됨, 누가 보거나 말거나에 개의치 않는 순수함, 소박한 진정성, 그런 마음도 헤아릴 수가 있겠지…그들의 축제가 끝난 후에도 들판의 교훈을 기억할 수 있도록 눈을 감아 볼 것이다. 그렇게 들꽃 같은 삶의 의미를 가슴에 담는 동안 우리 마음속에도 봄이 찾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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