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고 답답하던 마음이 차츰 절망감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이다. 어느 사회건 사람 사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늘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을 보면 그 사회의 수준과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번 세월호사고가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우왕좌왕 허둥대는 구조작업의 무질서와 비효율성에 실망감과 분노를 느꼈었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참담한 절망감을 느낀다.
세월호 사고 21일째 되는 날 민간 잠수사 한 분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30년 경력의 잠수사인 고인은 2인1조로 잠수하는 수칙을 지키지 않고 혼자 입수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안전수칙을 어겨 참사가 일어난 세월호 현장에서 또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이다. 더구나 현장 바지선에 군의관이 있었다면 곧바로 긴급구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과 21일전에 일어난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안전수칙 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워 지켜지지 않고 그냥 ‘빨리 빨리’정신만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답답해하면서, 누군가를 향해 분노의 손가락질을 해대고 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손가락질하고, 언론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기업의 탐욕을 나무라고, 공무원들은 정치인들을 욕하고, 보수는 진보를 향해 삿대질하고, 진보는 보수를 탓하고, 이편은 저편을 비난하고, 욕하고, 조롱하고…. 무서운 질타와 분노의 손가락들이 가리키는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저 사람들을 다 모아놓은 모습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여객선이 각종 안전규정을 무시하고, 선박을 개조하여 화물을 과적하는 것이 단순히 해당기업의 탐욕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요금체계를 통제하는 정부기관이 있고, 또 그 뒤에는 요금인상을 반대하고, 안전규정들을 귀찮아하는 우리들이 있는 것이다. 평소 생활에서 예사로 신호등을 무시하는 일에서 부터 매사에 원칙을 무시하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적당주의가 몸에 밴 우리들 각자 속에 악마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재영 칼럼니스트 권석하씨의 글에 소개된 영국인들의 일상생활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최근 칼럼에서 지난 부활절에 샀던 선물용 케익을 교환하면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 수퍼마켓에는 마침 담당직원이 자리를 비워서 옆 코너인 저장식품담당자가 케익을 바꿔 주었는데, 그 직원은 자기가 입고 있던 흰색 위생복을 벗고 새 옷, 모자, 장갑으로 갈아입고 바꿔 주느라고 무려 20분이나 기다려야 했었다고 한다. 그는 “성질 급한 한국 사람 같았으면 보다 못해 고함이 몇 번은 나왔을 시간이었다. 영국인의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이 매뉴얼을 따르는 전형을 본 듯했다”라고 적고 있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는 우리사회 구석구석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이 번 기회에 내속의 악마를 기필코 몰아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는 한 제2, 제3의 세월호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번 사고의 뒷마무리를 잘 하느냐에 따라서 이 번 참사는 우리가 선진사회로 한 걸음 다가서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세월호참사와 관련해서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남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딱 두 가지만 자문해 보았으면 좋겠다. 앞에서 예를 든 영국 수퍼마켓에서와 같은 상황에서 ‘대충해라!’ ‘융통성이 그렇게 없어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 ‘요령껏 해라!’ ‘저러다가 날 새겠다!’ ‘원칙 규칙 다 따져서 되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어!’ 라고 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가?
만약 내 아들이 세월호 선원이었다면, “너는 네 목숨을 던져서 승객들을 구해야지 왜 살아서 돌아왔느냐?”고 서슴없이 호통 칠 수 있겠는가? 나는 솔직히 이 두 물음에 대해 서슴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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