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에는 보건소 차가 와서 가슴 엑스레이를 찍어주었다.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제법 봉긋이 솟은 가슴을 더 돋보이게 하려고 우리는 한창 인기를 끌던 ‘ㅂ’사의 브래지어와 속치마 끈을 예쁘게 겹쳐 빳빳이 풀 먹인 하얀 아사 하복 속에 입고 다녔었다. 우리는 하복 상의를 벗고 푸른빛이 돌만큼 서늘하게 새하얀 속옷을 서로 곁눈질하며 엑스레이 기사 아저씨의 지시대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야, 너는 속치마 좀 빨아 입어라. 그게 뭐냐? 여학생이. 까만색인지 흰색인지 구분도 안 돼!” 기사 아저씨가 불쑥 내뱉은 말에 우리는 묘순이를 돌아보았다. 그랬다. 깜장이 지나친 과장이라 해도 회색쯤 되었을까? 마치 그 아이의 늘 풀이 죽어 있던 데트롱 하복처럼 언제나 말이 없고 공부 못하던 묘순이는 회색 속치마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서늘한 백색의 시선을 그 아이의 속치마에 쏟아 붓고 있었다. 우리의 백색 공주 놀음을 깨버린 그 아이에게. 그날의 회색 속치마가 단벌밖에 없어 차마 여름밤 열기에도 밤에 빨아 말려 아침에 입고 나올 수 없었던 그 아이의 가난임을 알게 된 게 언제쯤이었을까? 순백의 자랑 속에 내어 놓지 못한 열댓 소녀의 부끄러움이었는데…. ‘게으른가?’ 그렇게 여겼던 묘순이의 속치마가 왜 회색이었는지 흰색, 회색 모든 속치마가 바래고 찢겨 먼지 덩어리가 되어버린 이 세월에 겨우 알아차려 버렸다. 시간은, 세월은, 마당 가득 덮인 낙엽을 쓸어내며 애써 초록을 찾아보려는 늦은 가르침인 듯하다. 그래도 마른 가지와 서리 끝에 다른 초록이지만 찾아올 것을 알기에 묘순이를 닮은 중년 여인을 만나면 미안함으로 눈웃음을 건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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