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순간은 오래 가지 않고 절정은 짧아서 늘 불안하다. 그런데 봄은 그 화려함이 어쩐지 절정 같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겨울 다음에 오는 계절, 모두들 봄을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는데 나는 봄을 기다려 본 적이 없다. 기다림도 없이 부딪쳐버린 봄을 살면서 그 생명감 넘치는 시간 사이로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안타까움에 오히려 힘이 들곤 했다.
그에 비하여 겨울은 멀리 앞을 바라보면서 밝은 날이 오리라는 기대 속에서 겸허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같아서 좋다. 갈채 받는 계절 같은 고운 봄은 금방 꽃이 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고 그 뒤에 오는 허망함을 생각해야하는 두려움이 버겁다. 눈처럼 꽃잎이 휘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가슴에 구멍이 더 커져가는 허무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좀 길어도 불평하지 않는다.
생명의 등불을 밝혀준다는 4월, 봄의 중심인 듯한 4월, 그러나 영국시인 T.S 엘리엇은 모더니즘의 대표시라 일컫는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 가혹하리만큼 잔인한 달이었다. 우리의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었던 달이었고 너나없이 가슴을 처야 하는 원망스러운 달이었다. 제주도의 봄을 만나러가던 우리의 금쪽같은 자녀들, 지금은 어디에 숨었을까? 우리의 꿈이었고 보람이었던 우리 사람들, 한마디 송별사도 듣지 못하고 어느 하늘을 헤매고 있는지.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더라도 너희들은 불가사의한 존재로 화하여 하늘에 올라 낙화가 없는 영원한 꽃동산에서 물속의 추위를 녹이고 있겠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그 귀한 생을 빼앗겨야 하다니.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었어, 엄마 아빠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 형 친구를 부르는 소리를 감당하기 어렵구나. 우리 아들딸들아, 팔을 뻗어 내 손을 한번만 잡아다오. 너희들을 안아 올리지 못한 무능과 최선을 다 하지 못한 치욕스러운 죄 사이로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무서워한다. 행여나 시간의 흐름 따라서 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잊힐까 묻힐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 붉은 죄를 잊지 않도록 “시간이여 큰 초침소리로 우리를 깨어있게 하소서” 너희들이 못다 웃고 간 웃음소리, 못다 부르고 간 노랫소리가 들린다.
‘용서’ 란 말을 쓰기도 부끄럽다만 “용서해다오” 우리의 푸르른 청솔들아, 너희들은 컴컴한 지하층에서 몸부림치는 넋은 아닐 것이다. 하늘나라 가는 길에 조등을 달지 않아도 그곳은 밝으리라 믿는다.
세월호 보다 천 배 만 배 아름다운 배를 타고 유람하고 있으리라. 천지가 바스러지는 듯한 통곡을 뭉쳐 땅에 묻고 거기서 돋아나는 새싹을 너희들의 화신인양 지켜본다. 너희들의 의지를 본받아 알차게 자랄 것이다. 너희들이 입성한 천국은 더욱 밝아졌겠지. 하늘가 별자리가 더욱 빛나는구나. 그리고 너희들이 부모님께 올리는 송별사를 듣는다.
“어머니 아버지 용서하십시오! 자신의 생명인양 아껴주시던 정성안고 하늘에 왔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드리지 못함 죄송합니다. 어머니 영원한 절망은 없답니다. 아버지, 영원한 방황도 없답니다. 영원한 헤어짐도 없답니다. 정신을 가다듬어 주세요.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100년 전 빙산과의 충돌로 타이태닉호가 침몰되는 혼란 중에도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승객들의 목숨을 구하고 의연하게 배와 함께 숨져가면서 “영국인답게 행동하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영국은 어떤 나라이기에 그토록 위대한 선장을 낳았고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조국은 어떤 나라이기에 그 어린 승객들이 숨져 가는데 자신만은 살아야겠다고 먼저 도망치는 선장을 길렀을까? 영국에 신사도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화랑정신도 있었는데. 우리 모두 함께 새로운 한국인상을 조각해보자.
아프다 못해 저린 가슴을 쓰다듬는다. 소멸이라는 죽음의 속성을 넘어서 사라짐이 아닌 부활의 뜻을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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