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내비게이션이 나와 좀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 여름 휴가철을 맞아 온 가족이 여행을 떠날 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가족이 차를 몰고 먼 길을 떠날 때 운전을 하는 것은 대개 남자고 남편 옆에 앉아 지도를 보는 것은 주로 아내다.
시비는 이때부터 발생한다. 남편이 어느 방향이냐고 물으면 아내는 제 때 대답을 하지 못한다. 결국 길을 못 찾아 같은 길을 여러 번 돌게 되고 아내는 근처 주유소라도 들러 길을 물어보자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결코 길을 묻지 않는다. 헤매다 지친 부부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즐겁게 떠난 여행길은 “다시는 당신과 같이 가지 않겠다”는 소리와 함께 잡쳐지고 만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남성은 여성에 비해 공간 지각력이 뛰어나다. 한 눈에 쉽게 볼 수 있는 지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남성에게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헤매는 한이 있어도 남에게 길을 묻는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여성은 남성의 이런 고집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남녀 간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학문이 있다. 바로 진화 생물학이다. 인류는 오랜 기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고 그러는 동안 뇌의 구조도 바뀌었다. 인류가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 시작한 것은 1만년에 불과하다. 그 전 수백만년 동안 인류는 수렵과 채취를 하며 살아남았다.
이 때 수렵은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강건한 남성이 맡았다. 짐승을 잡기 위해서는 이를 발견한 후 짐승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눈팔지 않고 감시하고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다가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잡은 짐승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무사히 가져오는 일이다. 짐승을 잡고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말짱 헛고생일 뿐 아니라 목숨마저 위태롭다. 헤매다 가까스로 돌아온 사람은 동료들의 놀림감이 됐을 게 분명하다.
피임약도 없이 주기적으로 아이를 낳아야 했던 구석기 여성의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영양분보다 철분 섭취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철분이 없으면 태아도 산모도 목숨을 잃을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그 철분의 보고가 바로 육류다. 가장이 해야 할 일로 “집에 베이컨을 가져오는 일”(bring home the bacon)이란 영어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농업이 발명되기 이전까지 얼마나 사냥을 잘 해오느냐는 남성 능력 척도의 전부였다. 남자로서 대우받으려면 과묵함과 집중력, 공간 지각력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 자손을 더 퍼뜨릴 수 있었다.
반면 집근처에 남아 아이를 돌보며 식물을 채집해야 했던 여성들은 필요로 하는 능력이 달랐다. 우선 불도 살펴야 하고 애도 봐야 하고 나물도 뜯어야 하는 여성들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어디에 무슨 풀이 있고, 이 풀은 먹을 수 있고, 저 풀은 먹으면 안 된다는 정보를 교환하면서 언어 능력이 발달됐다.
지금도 여성은 TV를 보며, 밥을 먹으며, 전화를 하며, 아이들 참견까지 하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만 남자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는 못한다. 여성은 하루 2만단어를 사용하지만 남성이 사용하는 단어는 7,000에 불과하다. 그 대신 공간 지각력만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모든 분야에 여성 진출이 늘고 있는 요즘도 비행기 조종사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95%가 남성이다.
이런 남녀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여행 가서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부부가 다투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남편이, 아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수백만년 전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본다면 약간은 이해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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