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시원스런 초원에서 야구경기가 펼쳐지는 여름이다. 류현진, 추신수 선수가 우리들의 관심과 성원의 대상이다. 인기 연예인들 못지않게 대중들의 우상으로 섬겨지는 것은 같은 한인이어서 뿐만이 아니다. 야구경기 자체가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여가시간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야구는 ‘국민 여가(Nation’s pastime)‘로 불린다. 개개인 선수보다는 야구라는 운동경기 자체의 묘미가 일조를 하고 있다.
미국생활 첫 발을 딛었던 동부에서의 고된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 3-4일에 한 번씩 밤샘 당직을 하고 32시간 연속 근무 후에 몸이 과로에 부서진 채 집에 돌아오던 매일, 단잠과 함께 피로를 달래준 것이 TV로 중계되던 야구경기였다. 뉴욕 양키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가 당시 짧은 나의 ‘여가’를 그때그때 채워 주었다. 힘든 미국 수련의 시절 나의 고달픔을 어루만져준 상처 치료제였던 셈이다.
많은 운동경기 중 내가 야구를 선호하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야구 관람 중에는 다른 운동경기와는 달리 시간의 여백이 많이 주어져 평소 부족했던 가족이나 이웃과의 대화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맺어주는 대화와 즐거움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공유하는 즐거움 자체가 우정을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둘째, 야구는 일 년에 160일 동안 하며 농구는 80일, 아이스하키 40일, 그리고 풋볼은 20일간 경기를 펼치게 된다. 제일 오랜 시간을 같이 가질 수 있는 운동경기는? 야구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문호 톨스토이는 “첫째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이 시간, 둘째 지금 내 옆에 있어준 사람, 셋째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내 옆에 제일 오래 시간적으로 같이 있어주는 야구를 선택했다.
셋째, 야구는 그 자체가 수학적·물리적으로 계산되어진 고도의 이론과 생리 역학적 인간의 능력 한계를 고려하여 만들어진 경기이다.
그 외에도 여름밤의 야간 경기엔 넓은 녹색의 잔디구장에서 느끼는 싱그런 색감, 밤공기의 시원함이 있다. 주위를 비추어주는 대낮같은 야광등의 은빛 찬란함이 어둠속 하늘의 탁 트인 공간과 어우러져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며 이것들이 모두 함께 훌륭한 하모니를 우리 가슴속에 심어준다.
현대생활은 서로간의 대화를 줄어들게 한다. 자녀도 부모도 제각기 스마트폰과 인터넷과 TV에 몰두해 서로에 등을 돌리고 산다. 그러나 야구경기 관람 중에는 공통적인 대화를 나눌 시간의 틈이 있다. 콜로라도 덴버의 학회 보고서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이 있는 도시의 주민 이혼율이 없는 도시보다 23%가 더 낮다는 통계를 소개하며 야구 경기를 보면서 대화할 시간이 많은 것을 그 요인으로 설명한다. 화목의 버팀돌은 생활 속의 한 부분이 같이 어울려진,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의 끈끈한 연대감이다.
예일대 총장 출신으로 야구 커미셔너를 역임한 바트 지아마티(영화배우 폴 지아마티의 아버지)의 야구 예찬론을 들어본다. “야구엔 우리들의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이 있다. 메이저 야구경기는 삼라만상이 다시 시작되는 봄과 더불어 시작되어 뜨거운 여름에 활짝 피어나 하루의 온종일 오후와 저녁 한때를 다 채운다. 약간의 쌀쌀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월드시리즈가 끝나면 우리의 가슴 속에는 늦가을만이 덩그러니 남게 된다”이미 장성하여 자식들까지 둔 아들이 LA 다저스 경기를 같이 보러 가자고 조른다. 아마도 오래전 아버지와 같이 야구경기를 보러갔던 아스라한 어린 시절의 엣 추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 같다. ‘가슴에 와 닿는 그 무엇’인 야구를 이번 여름엔 아들과 함께 보러가서 부자의 정을 다시 찾아보아야겠다. 성인이 되어버린 아들의 근황과 생각을 알려주는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누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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