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성공과 성장이 자기 힘만으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친구 만들기’라는 포용과 관용의 과정을 통하여 성공과 성장은 이루어진다.
12 ~ 13세기 세계사의 큰 획을 그었던 거대한 유목 국가 몽골 제국이 대표적 예다. 놀랍게도 초강대국 몽골 제국은 ‘순수 몽골’을 주장하지 않았다. 매우 배타적 민족성을 가지고 있던 투르크, 위구르, 그루지야, 키타이 부족을 정복했을 때도 그랬다.
몽골은 언제나 타부족의 개성을 인정해주고 그들의 상이성을 널리 포용했다. 한번 몽골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준 몽골’의 이름아래 한 공동체로 동화되도록 이끌었다.
테무친 칭기즈칸은 ‘친구 만들기’의 뛰어난 재능을 가진 리더였다. 칭기즈칸은 중앙아시아의 한 작은 몽골 부족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청년 시절은 고난과 피난의 연속이었고,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불안의 정점에 항상 서 있었다.
하루는 청년 칭기즈칸이 메르키트 족과 싸우다가 패하고, 그의 아내마저 빼앗기고 황급히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칭기즈칸은 허겁지겁 도피하다가 엉겁결에 작은 기독교 부족 케레이 트족의 군주 옹칸의 처소로 뛰어들었다. 네스토리우스파 신자였던 옹칸은 청년 칭기즈칸을 안전하게 숨겨 주었다. 후에 칭기즈칸이 메르키트와 혈전을 벌릴 때에도 아낌없이 군사와 물자를 보내 도왔다.
그 후 세상이 바뀌어 칭기즈칸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세상 사람들은 ‘칭기즈칸’이란 이름만 들어도 떨었다. 무서운 군사력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중에 칭기즈칸은 불가불 옹칸의 부족과도 전쟁을 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옹칸은 패하고, 나이나 부족으로 피신했다가 곧 죽었다.
칭기즈칸은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옹칸의 갑작스런 죽음이 마음에 걸렸다. 은혜를 갚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옹칸은 죽었지만 옹칸의 가문은 끊어지지 않고 몽골 제국 안에서 다시 부활하기를 원했다. 마침내 칭기즈칸은 옹칸의 조카 셋을 자신의 가문에 받아 들였다.
그중 소르각타니라는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처녀가 있었다. 칭기즈칸은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막대 아들 톨루이와 결혼시켜 며느리로 삼고 극진히 아껴주었다. 과연 큰 리더답다. 놀라운 포용이고 관용이며 뛰어난 친구 만들기이다.
소르각타니가 누군가. 칭기즈칸이 죽은 후 몽골 제국의 후계자 대칸이 되어 기독교의 신앙을 전파하며 살았던 몽케와 쿠빌라이의 어머니가 바로 소르각타니다.
이처럼 몽골 제국 공동체 안에서는 적은 없고 누구나 친구라는 것이 칭기즈칸의 통치 철학이었다.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고정된 이념이나 과거의 전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칭기즈칸은 굳게 믿었다.
왜 똑같은 유럽의 식민지 국가로 출발했는데 북미는 잘 살고 남미는 가난한가. 왜 똑같은 하늘 밑에 살고 있는데 남한은 북한보다 27배나 더 잘 사는가. 왜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와 베네치아가 지금은 박물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친구 만들기’ 안에 해답이 있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가능하면 적을 만들지 말라. ‘친구 삼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으라. 아브라함 링컨은 일찍이 말했다. “진정한 승자는 적을 친구로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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