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6일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476명의 승객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어느덧 100일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한 달 만인 5월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약속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며 이른바 ‘국가 대개조’를 다짐했지만, 그로부터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흘린 눈물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이유이다.
대통령이 약속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야당과 유족들의 요구를, 새누리당이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가당찮은 이유를 들어 결사반대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수사권 부여를 완강히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출하지 못한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조사위가 수사권을 갖게 될 경우, 혹여 청와대 압수수색이라도 벌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당일 절체절명의 7시간 동안 박근혜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서실장 김기춘 조차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300여명의 승객들이 침몰하는 배 안에 갇혀 죽어가고 있던 그 시각에 대통령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조직적인 방해로 특별법 제정이 어려워지자 절망한 유족들이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난 18일 보수여성단체인 이른바 ‘엄마부대’가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에 몰려와 특별법 반대 집회를 열고 유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저주의 막말을 퍼부어 댔다. “진상규명? 노래도 세 번이면 지겨운데, 누가 죽으라고 그랬어?” “나라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닌데 의사자라니?”
아니 엄마라면서,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는 못할망정 인두겁을 쓰고 어찌 저럴 수 있을까. 부패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로 인해 자기 자식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처럼 원통하게 죽었어도 저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다름 아닌 엄마의 이름으로 말이다.
세상에 ‘엄마’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말은 없을 것이다. 엄마는 인간의 고향이다. 태어나 처음 말문이 트일 때 불러보는 이름이 엄마다. 포연이 자욱한 전장에서 피투성이가 된 병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토해내는 이름도 엄마다. 짐작컨대, 세월호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 단원고 학생들도 최후의 순간에 처절하게 부른 이름 또한 엄마였을 것이다. 더 이상 그런 엄마란 이름을 모독하지 말라.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엄마들이 요구하는 건 금전적 보상도, 의사자 지정도 아닌 ‘죽음에 대한 진실’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책임의 소재를 가리고 국가재난시스템을 재정비해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자는 것을 두고 보상 운운하며 거짓 선동으로 유족들을 조롱하는 악랄한 짓은 더 이상 말아야 한다.
엄마부대에 이어 지난 21일 역시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세월호 농성장을 급습해 특별법 서명을 받고 있는 책상을 뒤엎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념을 떠나, 실성을 하지 않고서야 도대체 어떤 어버이가 참사로 피붙이를 잃은 유족에게 저토록 무례하고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패륜 행위는 더 이상 해선 안 된다. 제발 어버이의 이름으로 어버이를 욕되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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