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나흘째 되던 4월19일 LA 총영사관 입구 오른쪽 벽에 기원소가 처음 차려지고, 애도와 추모의 뜻을 적은 글귀를 사람들이 하나씩 붙이기 시작하면서 평소 ‘벽’ 이외에 아무 의미도 없던 그 수직의 공간을 사람들은 ‘기원의 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벽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간을 분리하여 통할 수 없게 만든 물리적 구조물이다. 그런데 그 벽이라는 것에 사람들이 생각과 마음을 적어 붙이면서 본래의 목적과는 상반된 의사의 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기원의 벽’은 소통의 상징으로서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아직도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양심들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중 지난 6월20일 LA 총영사관은 일방적 통보와 함께 기원의 벽에 붙어있던 모든 글귀를 철거하였고, 기원의 벽은 다시 불통의 벽으로 그 의미가 퇴색해버렸다. 그 후 기원소 방문객들이 새로 써 붙인 모든 글귀도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철거되었고, 이러한 일은 매일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7월20일 토요일 4.16 특별법 제정 촉구 24시간 촛불 릴레이 행사의 일환으로 304개의 노란 종이배가 기원의 벽을 수놓게 된다. 4.16이라는 날짜 이외에 벽에는 아무런 정치적 구호도 없었고, 29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10명의 실종자가 속히 귀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노란 리본이 달린 304개의 노란 종이배로 표현된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월요일 아침 가차 없이 철거되었고 총영사관측은 ‘게시물 부착금지’라는 게시물을 부착하기에 이른다. ‘게시물 부착 금지’라는 게시물 외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벽을 보고 있노라면 본국정부의 개입과 입김이 느껴진다.
304개의 바람개비를 기획한데에는 나름 개인적인 이유와 욕심이 있었다. 우선 294명의 희생자들과 10명의 실종자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추모하고 싶었다. 그리고 유가족들을 비롯, 행동에 참여하는 벗님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 바람개비라는 것은 바람이 없으면 돌지 못한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4.16 특별법의 제정도 마찬가지다. 성역 없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진정성 있는 바람이 없으면 수많은 의혹들이 세월호처럼 이 세상 저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안전은 4월16일에 멈춰있을 수밖에 없다.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간 지 40일 만에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님이 눈물을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교황도 그를 직접 만나 위로하고 갔는데 대통령은 그를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30일이 다 되어 가는데 아무 것도 밝혀진 게 없고, 여당과 야당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과는 거리가 먼 이상한 합의만을 해놓은 상태다. 304개의 바람개비로 그려진 침몰하는 세월호의 마지막 모습은 비리와 야합, 그리고 불통으로 국민을 버린 대한민국을 상징했다.
400만이 넘는 양심들의 서명과 40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으로도 특별법 제정이라는 바람개비는 돌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제 추모를 넘어 공익과 공의를 요구하는 더 큰 바람이 일어야 한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작은 행동은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박수를 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줄지어 박수를 친다면 그 소리는 숲 밖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일상에 묻힌 채 가만히 앉아 공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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