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예문 1>
아내: 믹서기가 고장났나봐, 작동이 안되네.
남편: 당신이 뭔가 잘못 만졌겠지.
<예문2>
딸: A 때문에 요즘 참 섭섭해. 내가 전화해서 메시지를 남겨놓아도 리턴 콜도 없어.
엄마: 뭘, 그런 것 가지고… A도 최근 새 직장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겠니?
위의 아내와 딸은 상처를 받았을까? 내 대답을 말하자면 “두 사람 모두 (크든 작든, 알게든 모르게든) 상처를 받았다”이다.
예문 1에서 남편의 대답은 믹서기가 작동을 안 하는 것은 기계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아내의 잘못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담고 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닌 터라 그런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르고, 지금 한창 바쁜 데 아내가 믹서기를 손봐달라는 부탁을 해올까봐 미리 방어하느라(?) 퉁명한 대답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내의 말을 해석(?)하자면 “믹서기가 작동이 안되어서 당신한테 해주려한 음식을 만들 수 없어 속상하다”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부딪친 사소한 예랄까.
예문2는 예문 1보다 조금 더 까다롭다. 얼핏 보면 엄마는 딸을 위로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딸의 입장에서 보면 엄마가 자신의 섭섭한 마음을 알아주기 보다는 마치 A의 변호사처럼 상대의 입장을 먼저 대변한 것이다. 아마도 딸이 기대했던 말은 “그랬어? 우리 딸 정말 섭섭했겠네”정도였을 지도 모른다.
심리학이나 상담학 전공자가 아닌 나의 해석이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일치하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 아픈 사람이 넘쳐나는 요즈음이라 ‘공감’과 ‘소통’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식의 엉뚱한 시나리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공감이란 영어로 ‘empathy’인데, 이것은 동정이나 연민을 뜻하는 ‘sympathy’와는 다르다. 그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sympathy’는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딱하게 여기는데 반해 ‘empathy’는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겉으로 드러난 결과가 같을 수도 있지만,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숨겨져 있다.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딱하게 여기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판단’과 ‘평가’가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방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고 오히려 상대방의 상처를 덧나게 할 위험성이 있다. 이에 비해 공감은 상처를 치유하고 새 힘을 솟게 하는 능력이 있다. 공감의 치유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우리는 이번에 프란체스코 교황의 4박5일 한국방문을 통해 여실히 보고 느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쁜 일정 중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비롯하여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쌍용자동차 해고자, 제주 강정 마을 주민 등 한국 사회의 약자들과 고통 받는 이들을 만나 보듬었다.
그는 기적의 해결사도, 외교적 중재자도 아니었지만, 교황을 만난 이들은 “인간으로 존중받는 느낌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교황은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위로가 되는 그의 많은 말 중에서도 내게는 이 말의 울림이 가장 컸다.
남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 한국의 지도자들에게선 이것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한국민들은 교황에게 그토록 열광했으리라.
공감의 언어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타자화하지 않는 태도에서 출발하며, 이 같은 태도는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상생’의 사회로 이어진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보여준 아름다운 공감 능력이 우리 사회에 오래오래 깊은 울림을 주었으면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