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가 좀 이지러졌다. 야들야들 윤나는 연초록 어린 호박이 아니었다. 미적 절정기를 훨씬 넘겨버린 한물 간 호박이었다. 그러나 버릴 수는 없었다. 길쭉한 몸통을 길게 반으로 가른 후 씨를 도려내고 얇게 썰었다. 미색 속살의 초승달 모양이 보기 좋았다.
뒤뜰에 넓게 펴 말리면 좋으련만 토끼님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니 어찌하랴. 거실 통유리 창 앞에서 말리기로 했다. 묵직한 호박 여섯 개를 썰었으니 가슴에까지 가득 찬듯했다. 두툼하고 넓게 신문지를 깔고 썬 호박을 부어서 폈다.
자리가 좁다고 악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제대로 펴지 못해서 업치기 겹치기로 적당히 방치하면서 천천히 마르라고 아기를 달래듯 다짐해 두었다. 두어 번 뒤집어 주고 사나흘이 지났는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풋풋하던 호박 살이 오그라들면서 만들어진 공간이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마치 누가 와서 듬뿍 듬뿍 집어간 것처럼 사이사이에 큰 공간들이 생겨나 있었다. 얼키설키 엉켜서 좁다 하던 그들, 수분을 빼앗기고 나자 서로가 멀어져버렸다.
내 가슴에 휑하게 구멍을 뚫어놓은 듯 허전하고 야속하기까지 했다. 살아있던 호박이 수분과 함께 영혼을 보내고 나자 생긴 빈자리가 이 공간이란 말인가. 수분을 잃어버린 물리적 현상이 보여주는 쓸쓸함, 왜소함, 거기에는 속삭임마저도 있을 수 없는 공간인지 간격인지 이름 짓기 어려운 것이 새겨지고 있었다.
나는 마른 호박고지를 만지작거리며 찡한 감정을 삼키고 있었다. 호박을 썰어서 바구니에 담았을 때의 든든한 중량감은 어디로 갔는지. 원형을 잃어버린 앙상한 호박고지, 다시는 원형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충만함을 빼앗아 가버린 메마름이 냉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름다운 고립이다. 고립 없는 성숙은 없다. 개체가 되어버린 마른 호박고지는 강하게 단련된 자기성숙의 모습일 수 있다. 고통을 넘어선 후에 얻어진 해탈의 모습이다. 호박은 자라기도 어려웠겠지만 마르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바꾸는 일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진심을 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땅, 햇살, 그리고 바람과 비가 호박을 길러주었다. 인간이 어찌 자연을 온전하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겨울을 위하여 까실하게 말린 호박고지를 소중하게 감싸면서 생각했다. 존재의 고통을 증발시켜버린 상태, 서로에게 얽힌 정의 굴레에서 해방될 때 생기는 공간, 그것은 오히려 시원한 간격의 자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사를 벗어난 진정한 자기애의 차원일수도 있다.
호박은 기꺼이 말라서 저장되어졌다. 어느 날 필요할 때 물에 담가 주면 처음과는 많이 다르지만 부드러워져서 맛있는 나물되어 어느 밥상에 품위 있게 오를 것이다.
강둑에 앉아 강물이 흘러가는 이치를 배우듯이 말라가는 호박이 은유하는 의미에 흠뻑 젖어 보았다. 소박하고 겸손한 사랑이 더 크고 간절하다. “호박꽃도 꽃이냐”는 소리를 흔히 듣는다. 그러나 나는 호롱불 같이 크고 환한 호박꽃을 들여다보며 감탄하곤 한다. 그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황홀하다. 내가 발견한 최상의 미적 쟁점인지도 모르겠다. 수수하고 쫀득하며 맛깔스러운 호박 나물 같은 여자라면 세상 제일의 여자이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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