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당시 십대인 친구 딸아이가 수다를 떠는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몇 번 씩이나 얼굴이 화끈거리고 거북스러워서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신이 나서 조잘거리는 말 중에는 수시로 “졸라”가 여기저기에서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나는 그 말의 원형인 “X나게”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서, 무척 당혹스럽고 난처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아이는 그 말의 원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영어권 아이들이 한 마디 건너 “like”와 “fxxxing”을 섞어 말하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말을 양념처럼 골고루 섞어가며 자기얘기를 조잘거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어린 시절에는 욕을 하면서 자라지만, 철이 들고 어른이 된 후로는 가끔씩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욕을 상시로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서는 공개된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노골적으로 욕을 내뱉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를 대수롭잖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대사의 거의 반이 욕이다시피 한 저질 할리우드영화의 범람과 이를 본받아 “보다 자연스럽고 리얼한 연기”를 한답시고 거침없이 욕을 마구 쏟아내는 요즘의 한국영화들이 이런 현상을 가져온 데 한 몫을 한 듯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가 급속하게 정보화 사회로 변해가면서.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공간에서의 활동이 급속도로 늘어난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 인터넷공간에서는 자기생각을 표현할 때 체면을 생각하거나 남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으므로, 보통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심한 욕들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걸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인터넷 언어에 상시로 노출되다 보니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막가파식 어법이 자연스레 전염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우리 정치판, 나아가 사회전체가 점점 더 노골적이고 천박한 말들에 익숙해져 가면서 최근에는 세월호사고의 한 유가족이 현직 대통령을 향해 “XX년”이란 말을 공개적으로 퍼붓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다 같은 말을 사용하는 한 민족인 한반도 북쪽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차마 옮기기도 민망할 정도의 쌍욕을 국가공식 논평이란 이름으로 버젓이 내놓곤 하니, 대대로 ‘예의’를 중시하여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동방상욕지국’(東方常辱之國)이 되어버렸는지 심히 개탄스럽다.
예로부터 사람됨을 판단할 때 그 기준을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반듯한 몸가짐과 함께 사람이 쓰는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봤다. 품위 있는 사람은 품위 있는 말을 쓰고, 품격이 있는 사회에서는 품격이 있는 말들을 사용한다.
재치 있는 말과 유머로 무수한 일화를 남긴 영국의 처칠경은 의회에서 반대파의 신랄한 공격과 반대에 화가 나서 그들을 향해 “당신들의 반은 돼지들”이라고 욕을 한 적이 있다. 이에 격분한 반대파 의원들이 항의하면서 즉각 사과하고 그 말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처칠은 순순히 그 요구를 받아들여 단상으로 나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당신들의 반은 돼지가 아닙니다.”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이런 멋진 위트가 번득이는 장면을 볼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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