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도, 시계도, 아무런 장식도 없는 강의실에 대학생 160명을 모아놓은 후 그들이 지닌 휴대폰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있도록 주문했다. 한 시간 후 설문지를 나누어 주고 휴대폰 없이 지낸 느낌을 적도록 했다. 참여한 대학생의 90%가 “불안했다, 친한 친구를 잃은 것 같았다, 애인과 이별한 것 같았다, 무기력감과 공허감을 느꼈다”라고 답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낸시 치버 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다.
주변사람은 물론 전 세계와 실시간 연결을 가능케 하고, 복잡한 삶을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삶으로 개선시키는 테크놀로지가 아이러닉하게도 스트레스, 소외, 분리의 근원이 되고 있다. 수시로 문자와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하면 무언가 허전하고,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접속은 늘었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고, 데이트하는 연인이 서로의 얼굴보다는 각자의 손에 시선을 두고, 회의석상에서 테이블 아래로 끌리는 눈길을 막을 수 없고, 부부가 나란히 앉아 각자의 태블릿으로 서로 다른 영상을 보는 현실이 무엇을 말할까.
인간관계에서 감성을 제거한 테크놀로지, 어디를 가도 ‘수그린 고개’가 대세가 되었고,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봄으로 비무장지대보다 더 넓고 높은 단절의 벽을 쌓게 만들었다. 인간의 약점을 기다렸다는 듯이 파고 들어온 테크놀로지, 그것은 본래 고대 그리스의 단어 ‘테크네’에서 파생되었다. 하지만 요즘의 테크놀로지는 원래의 뜻과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다.
포도넝쿨이 뒤엉키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망사를 엮고 막대기로 받쳐주는 장치는 고전적 의미의 테크네다. 하지만, 해충피해를 막기 위해 화학농약을 살포하고, 온도조절을 위해 비닐하우스를 건설하고, 더 큰 열매를 얻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하는 등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성함으로 생산량을 높이는 것은 오늘날 의미의 테크놀로지다.
전자는 자연에 주어진 것을 자연스레 드러내도록 유도하지만, 후자는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동원하여 자연을 섭렵, 조작함으로써 자연스러움을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닦달이 아니면 무엇일까.
인간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쥐어짜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테크놀로지다. 한마디로, 테크네는 물과 나무처럼 상생하는 모습, 즉 서로 마주 보며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는 것을 뜻하며, 테크놀로지는 우둔한 고양이와 꾀 많은 생쥐를 그린 만화에 등장하는 톰과 제리처럼 마주할 때마다 상극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상극관계의 결과는 이렇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높은 빌딩을 짓고 넓은 고속도로를 건설했지만 인간의 참을성은 땅에 떨어졌고 성질은 급해졌다. 더 큰 집에 살지만 썰렁한 하숙집 분위기만 나고 가족의 냄새와 흔적은 사라졌다.
전 세계의 뉴스를 한꺼번에 보지만 안목은 더 좁아졌고 마음은 닫혔다. 지식과 학위는 얻었지만 판단력과 취향은 빵점이다. 컴퓨터, 휴대폰, TV화면은 수시로 들여다보지만 자녀의 얼굴이나 부모의 얼굴을 쳐다볼 시간조차 없다.
생명은 연장시켰지만 생활은 없다. 원자핵을 가르지만 자신의 속에 지닌 편견을 잘라내지 못한다. 달에도 다녀오고 화성까지 탐색로봇을 보내지만 길 건너 이웃집에는 가 본적이 없다. 문자, 채팅으로 쉴 새 없이 떠들지만 진정한 소통은 없고, 정작 강의실에서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게 발표하거나 명쾌하게 글로써 표현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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