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없다”는 생각이다. 내 눈에는 나이든 여자들이 예뻐 보인다. 거짓 없는 나의 느낌이다.
시카고에는 평균연령이 70세인 <어머니 합창단>이 있다. 변성기란 성장기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를 목 놓아 부르고 싶다는 바람 같은 것, 녹슨 성대를 달래며 훈련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염원까지도 동원되어 어머니 합창단에 들어가기로 했다.
처음 참석한 날 나는 깜짝 놀랐다. 개별적으로 나이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내 눈에는 어떻게 그렇게 한결 같이 예쁜지, 내 눈을 의심해보기도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주름이 좀 있는 듯한 얼굴을 보며 그의 젊은 날을 유추해보면 금방 얼굴이 환해지고 무척 고와 보인다.
세월을 뒤집어 쓴 얼굴에 고등학교 때의 교복도 입혀보고 웨딩드레스도 입혀본다. 키가 큰 사람 앞에 서면, 젊었을 때 코스모스처럼 멋있었을 것 같고 키가 작고 두툼한 체격이면 귀여웠을 것 같고, 각자의 개성이 돋보인다.
45명의 평범한 나이든 여성들, 그것도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들이 태반인데 객관적으로 전원이 미인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일 때마다 항상 모두 예쁘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내 눈에 나이든 여자는 아름답다. 아니 어머니는 아름답다. 그렇다, 그들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지도 모른다.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가 어디 있으며 어머니보다 더 강한 여자가 어디 있으랴.
높은 음을 낼 때는 힘든 얼굴이다. 강하고 빳빳한 목살을 잃어버린 어머니들의 목에서는 힘줄이 선연히 보인다. 고음을 발성할 때의 모습은 목적을 앞에 두고 최선을 다하는 양상이다. 무거운 수레를 끌고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비트를 살리세요.... 격렬하게 소리 지르세요.... 좋~습니다!” 허공을 날다가 휘젓다가 춤을 추다가 … 지휘자의 손은 바쁘다. 그의 얼굴에 번질거리던 땀은 드디어 빗줄기를 만들어 주르르 선을 그으며 밑으로 방울진다. 거기에는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그의 짜디짠 땀이 어머니들이 품고 있는 숨은 능력을 발굴하고 있다. 어머니들의 발성 수준을 끌어올리느라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노래하는 어머니들의 얼굴에는 생계를 위하여 노력했던 어머니, 병이 난 자식을 위하여 맨발로 눈밭을 달렸던 어머니, 자식들을 좋은 곳으로 떠나보내면서도 서운해서 우는 연약한 어머니의 영상들이 겹쳐서 어른거린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지난날의 흔적이 서려있다.
밖에 나가서 합창소리를 들어 보았다. 분명히 싱그러운 젊은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합창소리는 강인하고 아름답다. 합창을 듣고 있는 나의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눈알까지도 뜨끈해졌다.
어머니들의 가슴에는 불사조의 넋이 살고 있다. 가버린 날들의 삶을 은유하고 있는 합창의 울림에는 불살라버린 젊음의 열기가 후광으로 남아있다. 자기 안의 가능성을 퍼 올리는 순간이다. 연어가 귀소본능으로 역류하여 오를 때의 생기 찬 모습이다. 어머니들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박력이 용트림을 하는 순간이다.
새들에게는 못다 부른 노래가 있듯이 어머니들에게는 부르고 싶은 노래가 많다. 지극한 모성의 건강한 희생과 젖이 흐르는 노래로 어머니들의 모습은 충분히 젊고 아름답다.
“비요일의 꽃비” “치리비리빈” “넬라판타지” 신명이 난다. 오색 드레스를 차려입은 어머니들은 꽃 색시들이다. 늙음에는 찬란한 역사가 동반된다. 젊음이 아름답다 해도 심오한 노년의 아름다움에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첫 새벽의 여명을 맞이하는 듯, 새로운 삶을 꿈꾸는 어머니들에게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 없는 갈채를 보낸다. 앵콜 앵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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