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화제가 됐던 영화 ‘은교’ . 풋풋한 어린 여자를 보며 젊음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육체는 늙어갈지라도 마음은 나이 들지 않는 그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정적인 내용이네, 늙은이가 어린 여자아이를 생각하는 음흉한 마음이네…류의 노골적인 반응들이 있었음에도, 내가 읽은 소설 ‘은교’에는 선정성보다는 청춘에 대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담겨있어 마음이 아련했었다. 이팔청춘이니, 요즘 60대는 예전 50대니…하는 말들 속에 들어있는 우리의 생각은 어쩌면 ‘은교’의 주인공, 나이든 작가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빨리 스무살이 되어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어른들의 잔소리도 들을 필요 없이 내 맘대로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내 아이가 내 어릴 때와 똑같은 생각으로 ‘빨리 크고 싶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 내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낼까’ 고민하는 모습은 아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내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는 더욱 똑똑해졌다’라고 했다. 젊은 시절 부모는 나보다 나을게 없는 기성세대, 답답한 늙은이 같지만 나이가 들고 스스로 부모가 되고 나면 그때 보게 되는 부모는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청춘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상을 이겨내며 살았을까, 스스로 묻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마음이 아닌 경험의 눈으로 보게 된다는 것 같다. 마음은 여전히 아름다운 꽃을 보면 뛰고, 눈을 보면 신이나지만, 꽃은 시들고 눈은 녹는다는 경험에서 얻은 사실들이 축적된 생각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하고 놀고 싶다고 할 때도, 그렇게 했을 때 얻었던 결과를 알고 있는 내가, 그 경험의 눈으로 아이를 말리고 싶은 것이다. 쌓여가는 경험, 실패와 성공의 모든 경험들이 나를 어른이게 하고부모이게 하여, 10대 때와는 다르게 20대 때와 또 다르게 세상에, 사람들에게 반응하게 하는 것 같다.
멋진 영화배우 같은 남자를 길에서 보면 내 20대의 마음은 용수철처럼 뛰겠지만, 지금의 마음은 ‘멋있네!’ 생각하며 흐뭇하게 웃는 것 뿐이다. 그렇게 반응해야 한다고, 나이가 들면 달라져야한다고 학습되고 경험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한달에 한번 모여 맛있는 밥을 먹고 수다를 떤다고, 연락을 해온다. 열여섯에 만났던 아이들이 지금은 아줌마들이 되었지만, 만나는 순간엔 여전히 열여섯의 감성과 추억을 공유한다. 그 시절의 마음은 아직도 똑같이 남아있다. 멀리 있어 가지 못하는 나는 그마음이 내게서도 꿈틀거리는 것 같아 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마음은 이렇게 나이를 먹지 않는다.
누가 마음도 나이를 먹게 한다면, 세상이 달라질까. 늙수그레한 어른들이 이놈 저놈하며 초등학교 때 추억을 나누는 모습은 아름다워 눈물이 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든다. 또 한해를 보내며 나이 듦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시간을 따라 차곡차곡 주름지는 몸과 다르다. 책 ‘은교’에서 작가 박범신은 이렇게 말했다.
“너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한 해 한 해 벌로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듯, 여전히 젊은 마음의 나이를 갖는 것은 내 의지이자 내 권리이며, 누구도 타박할 수 없는 개인의 몫이다. 나이 들어도 마음의 나이, 영원한 청춘이면 뭐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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