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도, 사이버 먼데이도 무사히(?) 지나갔다. 아무런 구매도 하지 않았다.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들에 대해 90%까지 ‘초대박 세일’을 한다는데도 초연하게 그냥 지나갔으니 “그악스런 상업주의에 휩쓸리지 않은 줏대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가져야 할 지, 아니면 절약의 기회를 놓쳐버린 “게으른 바보”인지 나 스스로도 분간이 안 간다.
나 스스로에 대해 분간이 안 가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기독교인 맞아?”하고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요즘 같은 시즌에 “청교도들이 세운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는 정작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메리 크리스마스”란 인사는 거의 들을 수가 없다. “해피 할러데이”가 그 인사를 대신한다. 심지어 “크리스마스트리” 조차도 요즘엔 “할러데이 트리”로 불러야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반감은 생기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미국이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금지한 후부터 “미국에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고 개탄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다른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행태”로 비쳐진다. 동성애를 죄로 단정 짓고 혐오하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을 보면 “자신들이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확신이 불편해지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엄마로서는 어떤 엄마일까?”하고 생각해 보아도 혼란은 마찬가지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니 가수의 꿈을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19세 소녀 출연자가 소개되었다. “내가 그 엄마였다면 딸의 꿈을 응원해 줄 수 있었을까?”하고 자문해 보니 복잡한(?) 대답이 나왔다. 아마도 남들이 내게 그런 상담을 해왔다면 “딸을 믿고 그 꿈을 응원해 주세요”라고 근사하게 말했겠지만, 내 딸이 그랬다면, 쉽게 그렇게 말했을지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미국에 살고 있는 소위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나의 정서는 어느 편일까? 미국 뉴스보다는 한국 뉴스, 미국 드라마 보다는 한국 드라마에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지만, 막상 한국에 가서 며칠 지내다 보면 이것저것 불평불만이 입에서 저절로 나오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휴, 이제 집에 가는 구나”하고 안도 섞인 한숨이 나오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 나뿐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혼란스런 순간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어느 순간은 자신을 설득하며, 어느 순간은 자신과 타협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들 인생에 던져진 이러한 모순과 갈등의 순간들이 그리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순간들을 통해 저마다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고 마음이 성장한다고 믿는다. 스스로에 대해서든 외부 환경에 대해서든 모순이나 회의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마음의 성장판이 닫힌 것 같아 그다지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모순과 회의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불화와 화해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다. 송년회다 뭐다 하여 이런저런 모임이 줄줄이 잡혀 있는 12월이지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 ”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잠시나마 반추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연말을 덜 허전하게 보내는 방법일 듯하다.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의 여지가 없이, 이제 세월 따라 나이를 먹어가며 쭈그렁 노인이 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 그 무엇이 위로가 되겠는가. 멋지게 나이 먹는 길… 그것은 반추와 성찰을 통해 마음의 성장을 지속하는 일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것은 리프팅 시술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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