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 <수필가>
12월은 심혼(心魂)의 달이다. 땅속 깊이 잠든 생명체들의 침묵과 나목(裸木)의 거리를 바라보는 심성(心性)이 맑아지는 계절이다. 지나간 세월은 열두 달의 끝에서 “너는 일 년을 어떻게 보냈느냐?”라고 묻는다. 지나온 길을 점검해 보고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다.
지난 일 년은 세월의 강물에 흘러가는 이파리처럼 떠밀려온 것 같다. 여러 가지 일들로 나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그런 나를 위해 겨울새 같은 찬바람이 말없는 곳으로, 다툼이 없는 곳으로, 오욕칠정(五慾七情)이 넘쳐나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산과 바다를 찾아 심혼을 맑히던 일상의 그림자가 하늘에 둥지를 틀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삶의 피리소리를 듣게 한다.
12월은 사라져 간 날들에 대한 아쉬움만 있는 게 아니다. 새날들이 오리라는 밝은 등불이기도 하다. 거리와 집들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성자(聖子)의 심혼으로 피어나 우주에 가득하다. 생(生)의 고해(苦海)를 헤엄치다 ‘나’를 잃어버린 당신과 나의 심혼에 불꽃을 당겨 주는 신(神)의 입김이다. 힘든 삶속에서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받았던 상처들이 하얀 눈처럼 스러지고 기쁨의 날들이 올 기약의 믿음이다.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12월은 야박스런 술집 주인과 같다. 올 때는 호들갑스럽게 반기지만 헤어질 때는 너무나 가볍게 악수를 청하고 만다.”라고 원망한다. 어떤 시인은 “가계부는 탕진이다/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내민 손처럼/불결하고, 가슴 아프고/신경질 나게 한다”라는 회한에 젖는다. 어떤 이들에게 12월은 어둡고 썰렁하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은 ‘절망보다는 희망’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험난한 세상을 건너갈 힘이 생길 것 같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갈 한 가지 재능은 가지고 태어난다 했으니 낙망할 것도 없다. 생명을 가진 자로서, 자기라는 존재가치를 실현하며 행복과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신의 배려는 공평하지 않을까. 그중에도 자기 안에 깃든 심혼을 아름답게 닦는 일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하루에 한 번쯤은 높은 하늘을 보자. 달을 쳐다보고 별을 바라보고 밤하늘을 우러러보자.”했으나 쉽진 않았다.
12월이 되면 나는 실향민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많은 지인들이 고국을 방문 중이다. 그들은 즐겁겠지 하면서도 내가 그리던 고향과 조국이 거기 없다는 걸 알아버린 심상이 쓸쓸하다. 내안의 그리움은 길을 잃고 기억에 잠긴 추억들만이 잠을 설치게 한다. 그래도 좋다. 나는 이제 당신과 함께 12월의 창가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리고 싶다. 우리보다 추운 누군가를 위해, 이민자들의 고향이 태평양 하늘임을 아는 이들을 위해, 새날에 피어날 인고의 결실들이 당신 것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머리를 숙인다. 한해의 뒷모습에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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