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추진과정에서 소중한 한 생명이 잉태되었다.
지난 1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국교정상화 선언이후 미국 교도소에서 풀려난 쿠바 스파이 삼총사의 귀국 장면이 쿠바 TV로 방영되었다. 이중 한 명인 에르난데스가 마중 나온 만삭의 아내 페레스의 배를 정성껏 쓰다듬자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첩보활동을 하다가 1998년 미 당국에 붙잡힌 이래 전혀 만나지 못한 이 부부는 어떻게 임신을 했을까? 미 CNN과 NBC방송이 그 사연을 밝혔다. 패트릭 리히(민주당, 버몬트) 연방상원의원 부부가 지난 해 2월 쿠바를 방문했을 때 종신형을 선고받은 남편의 아이를 가임연령이 끝나기 전에 몹시 갖고 싶다는 페세르의 사연을 들었다. 이에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에르난데스의 정자를 채취해 쿠바에 전달했다고 한다. 두 나라 국교 정상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아이는 곧 출생을 앞두고 있다. 빗장이 풀리려니 상상도 못하던 일이 모든 것을 수용하고 ‘흐르는 강처럼’ 자연스럽다.
미국의 우방인 한국도 쿠바와의 외교관계가 없다보니 쿠바에 대해서는 가난한 미개발국이라는 이미지가 크다. 우리가 아는 것은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쿠바의 수도 하바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쿠바음악 정도이다.
1959년 카스트로와 함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쿠바 혁명의 주인공 체 게바라(1928~1967)는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의과대학생이던 1952년,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여행하면서 빈부격차와 노동착취의 현장을 목격하고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혁명광장 내무부 건물에 체 게바라의 대형 얼굴 사진이 걸려있다고 한다.
요즘 그 밑을 지나 하바나 시내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미국산 할러 데이비드슨이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소식이 들려오면서 이미 오토바이 일주 여행업체가 체 게바라 묘역과 혁명 전투지를 둘러보는 관광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비즈니스를 위해 마련된 할러 데이비드슨은 14대, 그런데 오토바이 일주 여행업체의 오너가 체 게바라의 아들 아르네스토란다.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아들이 혁명가이어야 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 시절, 체 게바라가 탄 오토바이는 한 대에 3만달러이상이라는 최고급 오토바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맘보, 룸바, 차차차, 살사 등 다양한 리듬을 탄생시킨 쿠바 음악, 1959년 혁명이래 부르조아 음악으로 취급되어 뒷골목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왔다. 1996년 미국의 작곡가 라이 쿠더가 젊은 시절 심취한 쿠바음악의 본산지를 따라가 수소문 끝에 과거의 뮤지션들을 찾아내었다. 허름한 창고에서 6일만에 음반녹음 작업을 완료했고 밴드이름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보컬, 피아노, 기타, 트럼펫, 드럼 등 이들의 뜨겁고 힘찬 연주는 그 누구도 연주자들이 70~80세, 90세 고령이라고 짐작 못했다. 생활고에 찌들리고 심적으로 고통받으며 반평생을 살아온 이들은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도 웃으면서, 슬픈 삶을 기쁘게 연주 했다.
나 역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출퇴근길마다 테이프가 닿도록 들었던 적이 있다. 이들의 연주는 삶의 애환을 ‘흐르는 강처럼’ 풀어냈다고 평한다.
앞으로 쿠바는 비즈니스 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사람과 돈, 일거리가 늘어날 것이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도 들어갈 것이고 쿠바계 아메리칸은 물론 미국인 관광객들도 몰려들 것이다.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에 나선데 이어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정상화 했으니 북한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제 미국과 쿠바간 여행 자유화 길이 열렸는데, 요즘의 한반도 정세를 보면 북한과의 여행 자유화 길은 아직도 멀고 먼 길이지 싶다. 뭐든지 ‘흐르는 강처럼’ 자연스럽게 풀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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