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용본•함문님 부부 자녀, 의료•교육계서 두각
▶ “잘해줘도 늘 미안한 게 부모마음이네요”
함용본, 함문님씨 부부의 다정한 모습.
아들 함승완씨 미 서부최초 ‘로봇혈관수술 성공’
딸 함승연씨, 알라메다 카운티 ‘올해의 교사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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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자식이 있듯 자랑스러운 부모가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열과 성을 다한 뒷바라지로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들을 바라보며 부모들은 “남보다 잘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는데 알아서 잘 커줬다”며 공을 자식에게 돌리곤 한다.
미국으로 이민 와 자식들을 위해 ‘일분일초’를 치열하게 살았으면서도 이렇듯 우린 특별히 한 일이 없다고 한다. 헤이워드 거주 함용본(68), 함문님(65) 부부가 바로 그런 부모다.
33년 전인 1982년 함용본씨가 친누나의 초청으로 결혼한 지 5년 만에 4살과 3살박이 연년생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당시 이들은 35살과 33살의 청춘이었다.
“초청해서 미국에 오는 데 수속기간이 3년 걸렸어요. 기다리면서 두 아이를 출산했고 우린 꿈에 부풀었죠.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꿈에 나라’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으니까요.” 서울 토박이로 경희대 체육과를 나와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함용본씨와 같은 대학 국문학과 출신으로 영자신문인 ‘코리아 해럴드’에서 일하다 전업주부가 된 함문님씨에게 미국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미국에 온 그해 1년은 누나가 있는 유니온 시티에서 살았고 헤이워드로 이사와 현재까지 32년째 살고 있다. 이들 부부는 미국에 와서 한국에서 안 해보던 고생길에 접어들었다.
함씨가 처음 한 일은 다니던 교회의 지인 소개로 샌프란시스코 피어에 정박해 있던 군함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새벽부터 그 넓은 군함을 청소하고 나면 팔다리가 빠지는 듯 했지만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뼈가 부서져라 일했다.
그리고 컴퓨터 부속고치는 한인 회사에서 부인과 함께 2년을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SF지역 우체국 시험에 합격해 1987년부터 23년 간 집배원으로 바쁘게 뛰어다녔다.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생겼다는 게 꿈만 같았어요. ‘회사가 혹시라도 감원하는 건 아닐까, 망해서 문을 닫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던 그때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잘해줘도 늘 미안한 게 부모마음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그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집배원으로서의 모습을 두 자녀에게 보여주면서 집안에 사랑도 배달했다.
부인 함문님씨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하자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편과 같은 컴퓨터 부속품 고치는 회사를 다녔고 그 다음 햄버거 등을 파는 델리샵에서 매일 3-4시간 씩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더 일하고 싶어도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픽업 때문에 일할 수 없었어요. 천지가 개벽한다고 해도 두 애들 픽업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본 적 없어요. 이건 철칙이었죠.”그렇게 착실하게 한푼 두푼 모아 함씨는 회사 내 위치한 카페테리아에 입주하게 됐다.
하지만 불경기로 인력이 감원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이런 시련을 딛고 일어나 얼마 후 헤이워드 주립대학 주변에 햄버거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음식 솜씨만큼 사업수완은 좋지 않았는지 2번째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는 “예전과 거리가 멀었던 장사란 걸 생전 처음 해봤고 어려움이 많았다”며 “열심히 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장사가 아니란 것도 비싼 수험료를 주고 깨닫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천성이 쾌활하고 긍정적인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함문님씨의 힘의 원천이었던 오뚝이 같은 근성은 두 남매였고 그는 또 이번에도 아이들을 보며 일어섰다. 그 후 SF 연방빌딩 내 카페테리아에 직장을 잡아 아침•점심 서빙을 10여년이나 하다가 지난 2013년 초 은퇴했다.
부부의 일생은 콩나물이 가득 담긴 시루처럼 빡빡했지만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따스한 존재였다. 때론 ‘정신봉’이라고 이름붙인 나무 막대기를 치켜들기도 하고 집안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불호령을 내리기도 했지만 인간적인 부모가 되려 최선을 다했다.
“절대 남에 애들과 공부나 가진 재능을 비교한 적이 없어요. ‘이거하라는 식’의 복종을 강요한 적도 없고요. 비교하지 말자고 했던 게 우리 부부만의 교육방식이라면 방식일지 모르겠네요.”한번은 부부의 남매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당시 학교 친구들한테 ‘차이니스’라며 놀림을 받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었다.
몇 날 몇일 영어로 이야기할 말들을 연습해 간 함문님씨는 교장을 만나 조목조목 따졌고 결국 괴롭힘은 중단됐다. “아마 내 일이라면 그렇게 못했을 겁니다. 아이일 이었기 때문에 용기가 났고 무서울 게 없었나 봐요. 한국의 어머니들 자식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잖아요.”함씨는 그렇게 미국에서 자녀들의 곁을 지키는 ‘슈퍼 히어로’와 같은 ‘슈퍼 맘’이 됐다.
함씨 부부의 이런 정성 속에 자란 두 꼬마 남매는 성장해 함승연(36)씨는 알라메다 카운티 1만명 교사 중에서 선발돼 작년 ‘올해의 알라메다 카운티 교사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교육감을 꿈꾸고 있다.
동생 함승완(35)씨는 작년 10월 서부지역 최초로 로봇을 이용한 혈관수술에 성공한 의사가 됐다. 현재는 남가주대학병원(Keck Medical Center of USC)에서 로봇혈관수술 전문의 겸 임상외과수술학과 조교수를 맡고 있다. 남매가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각각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함씨 부부가 말한 “아빠, 엄마처럼 힘들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길 간절히 바랬다”는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현재 함승연, 함승완씨 남매는 둘 다 결혼해 똑같이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그들은 “우리 부모가 가르친 대로 이젠 우리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가 됐다”며 미소를 보냈다.
<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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