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보잉,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스타벅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있다는 건 몰라도 ‘바다수리’(시혹스)의 둥지가 있는 걸 안다는 사람들이 요즘 많아졌다. 시애틀 주민들도 ‘보잉의 시애틀’이나 ‘MS의 시애틀’보다 ‘시혹스의 시애틀’에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 시혹스가 한 번도 어렵다는 대망의 수퍼보울 경기에 2년 연속 출전하기 때문이다.
시애틀 시혹스는 2월1일 애리조나 피닉스로 날아가 보스턴에서 온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챔피언 방어전을 벌인다. 미국 땅 서쪽 끝과 동쪽 끝에 각각 위치한 두 도시는 인구규모(65만여명)와 IT산업이 발달한 점이 서로 닮았다. 하지만 풋볼팀 전력에서는 시애틀이 보스턴에 못 미친다. 야구에서 매리너스가 레드삭스에 족탈불급인 것과 비슷하다.
시혹스-페이트리어츠 경기를 시애틀과 보스턴의 130여만 시민들만 기다리는 건 아니다. 수퍼보울은 전통적으로 미국 전 국민이 열광하는 연중최대 스포츠 이벤트다. 역대 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10개 TV프로 중 9개가 수퍼보울 경기였다. 미국인들은 이날 TV중계를 보며 12억5,000만여 개의 닭다리를 먹어치운다. 이튿날엔 소화제가 평소보다 20% 더 팔린다.
미국인들의 풋볼사랑은 거의 불가사의다. 텍사스 등 남부 지역에선 풋볼이 종교에 비견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점잖다는 시애틀 시민들도 풋볼 경기장에만 가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요란한 함성을 내지른다. 매리너스의 세이프코 필드구장은 텅텅 비지만 시혹스의 센추리링크 필드는 경기마다 만원사례다. 거리엔 ‘12’ 응원기를 단 차량들이 꼬리를 잇는다.
작년 해리스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거의 절반인 46%가 풋볼을 최고인기 스포츠로 꼽았다. 프로풋볼 인기는 1985년 미국의 전통적 ‘국민 여흥’인 야구를 앞지른 이후 부동의 1위를 지켜오고 있다.
한국에서 미식축구로 불리는 풋볼은 영국의 럭비에서 유래돼 1869년 11월6일 럿거스와 프린스턴 대학이 첫 경기를 벌였다. 팀당 선수가 25명이나 됐고 공도 축구공이었다. 그 후 1880년 예일대 선수인 월터 캠프의 주도로 경기규정이 개정됐다. 선수가 11명으로 줄었고, 공이 타원형으로 바뀌었고, ‘다운’ 개념이 도입됐고, 럭비와 달리 전진패스가 허용됐다.
그 후 대학 풋볼 팀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룰이 개정됐지만 경기는 여전히 난폭해 1905년 한해에만 선수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학풋볼을 금지시키겠다고 엄포를 놓자 전국의 62개 대학 대표들이 그해 말 뉴욕에서 대책회의를 가졌다. 무소불위의 파워를 자랑하는 전국 대학운동협회(NCAA)가 그 때 결성됐다.
지난 주 NFC 결승전에서 시혹스에 분패한 그린베이 팩커스가 수퍼보울의 첫 챔피언이었다. 실제로는 양대 리그(NFL-AFL) 챔피언전의 첫 두 대회((1967~1968년)를 석권했지만 1969년 리그 통합 후 수퍼보울이 탄생하자 1~2대 챔피언으로 소급 대우받았다. 수퍼보울 트로피 명칭도 당시 팩커스를 이끌었던 빈스 롬바르디 코치(암으로 사망)의 이름에서 땄다.
수퍼보울 최다 우승팀은 피츠버그 스틸러스다. 8번 진출해 6번 우승했다. 달라스 카우보이스는 8번 진출해 5번 우승했고 이번에 시혹스와 맞붙는 패트리어츠는 지금까지 7번 진출해 3번 우승했다. 시혹스는 2006년 40회 수퍼보울에 처음 진출해 스틸러스에 21-10으로 깨졌지만 작년에 덴버 브롱코스(7번 진출)를 43-8로 대파하고 처음 수퍼보울 챔프가 됐다.
시애틀이 한 겨울에 수퍼보울 열기로 뜨겁다. 풋볼에 시큰둥한 편인 중·노년 층 한인들도 한다리 낄 기회가 있다. 유니뱅크가 월드컵축구 때처럼 린우드 본점 강당에서 한인 단체응원 이벤트를 마련한단다. 거기서 모처럼 한인 남녀노소가 시혹스의 ‘12’번 선수로 어울려 소리 지르는 것도 수퍼보울 문화를 익히며 이민생활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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