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새내기 여대생 조카 둘이 방학 한 달간 미국의 이모네로 놀러 왔었다.
딸과 동갑내기 스무 살짜리들과 함께 다니며 수다의 나날이 이어지고 조카들의 엄마인 언니들의 젊은 시절의 비리와 비화도 뻥 뻥 터트려주면서 신명나게 다녔었다. 나름 사이가 많이 좋아진 우리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 아빠가 늘 토닥거리며 잘 싸운다는 조카에게 물어봤다.
“엄마가 아빠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니?” “아뇨, 그걸 말해야 아냐고 그래요.”“너 집에 가면 엄마한테 꼭 말해줘라, 말을 해도 잘 못 알아듣는 분들이 남자님들이라고! 말을 해야 하고, 것도 사람에 따라 여러 번 해야 알아먹는 사람도 있으니라.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채찍과 당근으로 훈련을 시키라고, 안 그럼 노후도 갑갑할 것이라고…” 그러면서 여자가 근본적으로 보는 시각과 생각의 차이를 들려주었다. 적어도 남녀가 한 집에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대부분 아주 치졸하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부엌에서 뭔가 하면서 거실에서 TV를 보는 남편을 부르면 10명중에 9개 반의 남자들은 듣지 못한다.
다만 아주 희귀한 반개의 남자들만 더러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남녀가 결혼하고 한 집에 살게 되면 그 차이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서로 받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총동원했었다. 분노와 질타, 눈물의 호소, 칭찬과 격려, 무한한 인내, 편지 등을 이용한 감성적 이해 도모 기타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었고 그 과정은 길고 혹독하고 엄청난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현실이 되었다. 내가 만난 남자는 다행히 인성이 양질이라 이런 방법을 동원하면 조금씩 변화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 남자의 입장에서 만난 나라는 여자가 양질이었는지 남자의 입장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혹독한 시간을 견뎌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목된 야생의 망아지같았던 남녀가 한집에서 가족의 기틀을 마련하는 시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는 말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은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상 알아들었다고 해도 느낌으로 알아듣는(영화속의 연애스토리에서만 가능하다)건 대부분 정확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와달라고 말을 해야 하고, 만일 도움을 받지 못해서 서운하고 힘들었을 땐 나는 그랬다.
그때 당신이 못 와서 혼자 이런 마음이 들었으며 그 일을 혼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더라고, 그 상황이 지난 후에도 설명한다. 그러면 상대방의 마음속에 미안함이 스며든다는 걸 보게 되었다.
남편은 간혹 내가 뭔가 물으면 머리를 끄덕하고 답을 하는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가벼운 입을 두고 왜 무거운 머리로 답해… 그러면 내가 꼭 봐야만 답을 알 수 있잖아.” 그냥 피식 웃는다. “꼭 말을 해야 아니, 보면 몰라?” “보고도 안 도와주니까 그렇지!”
김현희(가톨릭신자/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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