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한 <공인회계사>
금발의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오늘 넥타이, 참 보기 좋은데요. 정말 멋있어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맨하탄의 끝을 올려다 볼 수 없이 높이 솟은 건물. 새로운 손님을 잡아야 하는 낯선 자리였다. 정말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큰 외국 회사가 한국 회계사에게 과연 일을 맡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 회사를 잡지는 못했다. 사실 그날 미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 리셉셔니스트의 한마디에 난 어깨를 쭉 폈고 그것이 힘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계약 직전까지도 갔었다. 그러나 빼앗기는 쪽 회계법인에서 막판에 "회계사를 우리 같이 큰 곳에서 그렇게 작은 곳으로 바꾸면, 당장 IRS 세무감사가 나오고 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해갈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협박(?)을 하는 바람에 회계사를 바꾸지 않기로 했다. 얼마 뒤 결국 바꿨지만.
어쨌든 그 넥타이를 한동안 매일 맸던 기억이 난다. 맬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 넥타이를 준 사람은 누군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 날 들었던 말은 기억이 났다. 이렇게 말은 물질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 사소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주 큰 힘을 준다. 반대로 기를 죽게도 만든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싸움이 되기도 한다. 내가 손님들에게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그랬군요. 얘기를 더 해보세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또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까이에서 도와드릴게요." 많은 손님들이 안심을 하고 위안을 받는다. 물론 진심으로 할 때만 그렇다.
직원들에게도 좋은 말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거의 실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난 외모의 변화를 잘 모른다. "이 회계사, 머리했네. 5년은 젊어 보인다." 그런데 "문 회계사님, 머리 한지 1주일도 넘었는데요." 허걱!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다. 내 자동차는 빨강색이다.
60개월 무이자 할인을 한다고 해서 새 차를 사러갔다가, 아무 색깔이나 달라고 했다. 남들은 50살 회계사가 무슨 빨강색이냐고 핀잔을 주지만 지금도 난 잘 타고 다닌다. 그만큼 내 자신의 모습에 신경을 안 쓰니 남의 외모라고 잘 보이겠나? 관심 없는 사장이라고 직원들에게 오해만 받을 뿐이다.
그나저나 서랍 속에 있는 저 손수건의 처리가 고민이다. 아까 말한 그 넥타이는 어느 손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화가로부터 손바닥만 한 작품을 받거나 바이올리니스트부터 자신의 CD를 받는 일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서 다녀간 손님이 손수건을 놓고 갔다. 집에 갖고 가지니 "여자가 준 것이냐?"고 눈을 흘길 것 같고, 누굴 주기도 그렇고. 술처럼 마셔버릴 수도 없으니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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