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캐나다에서 연방대법원이 ‘의사 도움에 의한 자살’ 금지가 헌법상의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1년 후 부터는 불치병으로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의사의 도움을 받아 합법적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안락사 문제는 1993년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을 앓고 있던 퀘벡의 수 로드리게즈 재판에서 대법원이 5대4로 안락사를 불허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수시로 사회적 이슈가 되어오다가, 지난 달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그 입장을 바꿈으로써 안락사의 합법화 시대가 열렸다.
국가가 어떤 법을 제정할 때는 일반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 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꼼꼼히 따져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뜻밖의 부작용이 일어날 소지가 없는지를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한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안락사나 사형제도 관련법은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영 개운치가 않다. 우선 한명의 반대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는 점이 께름칙하다. 안락사 문제는 다양한 이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안락사가 허용된 나라에서도 여러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쾌도난마식으로 이런 결정을 했다는 사실이 대법원의 균형감각과 고민의 깊이를 의심케 한다.
현재 안락사가 허용되어 있는 몇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문제의 복잡성과 심각성을 금방 알 수 있다. 벨기에의 경우, 한 조사에 의하면 프랑드르 지역에서 실시된 안락사의 32%가 환자의 명백한 요구 없이 이뤄졌으며, 2010년 발표된 조사에 의하면 간호사들이 관여한 안락사의 45%가 환자의 명백한 요구 없이 시행되었다. 전체적으로 1/4 이상의 안락사가 환자의 동의 없이 시행되었다.
네덜란드의 경우 안락사나 조력 자살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1982년 로테르담 법원이 규정한 지침에 부합하는 경우 사실상 의사들에 의한 안락사가 용인되고 있다. 지침의 내용은 환자의 고통이 참기 어려운 정도일 것, 환자가 의식이 있을 것, 환자의 요구가 자발적일 것, 환자에게 다른 대안을 알려주고 생각할 시간을 줄 것 …등으로 일견 환자를 위한 보호장치들이 잘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1990년 실시한 정부 공식 보고서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면 1,040명의 환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사들에 의해서 안락사를 당했고, 8,100명이 의사들의 진통제 과다투여(통증해소가 아니라 사망촉진 목적)에 의해 사망했다고 한다. 그중 61%는 환자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안락사가 비자발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회복 가망성 없이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는 환자들을 보면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합법적인 길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그럼에도 더 살고픈 환자의 경우를 가정해 보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런 환자의 경우 법적으로 안락사가 허용된다면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언의 압력을 느껴서 자신의 속마음과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을 악용하여 합법을 가장한 사실상의 살인이 저질러질 가능성도 크다.
좋은 취지로 정부가 보장한 ‘죽을 권리’가 자칫 ‘죽일 권리’로 변하지 않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해서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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