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주들이 전화를 걸어와 노동법에 관해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0년간 고용주 방어로 특화해 온 사무실 운영철학과 내 개인 성향이 겹쳐, 대개는 그냥 걸려온 전화에도 가급적 친절을 다한다.
그런데 이따금 자신에 대해서는 밝히지도 않은 채 맡겨놓은 물건 찾듯이 다짜고짜 원하는 질문만 던지는 고용주들이 있다. 노동법 자체를 묻는 경우라면 그래도 설명을 해주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어투가 쏘아붙이는 식으로 바뀌게 하는 질문이 있다. 예를 들면 “그런데,(종업원이) 불법체류자인데요?”다.
너무나 당당히, 마치 종업원이 불체자라서 자신은 노동법의 치외법권에라도 있는 듯한 말투로 이를 확인하듯 물어오면 “그래서 어쩌라고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곤 한다. 대개는“관계없어요. 노동법대로 그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답한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이민국에 고발하면 어떻게 되느냐”“불체자인데도 내가 써줬는데…”라는 식으로 한마디를 더 치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이르면 나의 얄팍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다. “아니, 사장님이 일 시킨 것 맞아요? 틀려요? 일 시켰으면 돈 주셔야 되잖아요?”라고 누군가를 훈계하는 듯한 목소리로 변하게 된다.
불법체류자(혹은 서류 미비자)에 대한 어떤 형태의 판단이나 비판을 가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나의 이러한 감정의 저변에는 ‘얌체의식’이 있는 고용주들에 대한 미운 감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미국은 각 주정부가 연합해있는 연방주의(Federalism)에 근거해 움직이는 국가로 헌법에 연방정부는 주정부 권리에 대한 침해 내지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때문에 대외적으로 하나의 국가로서 힘을 행사하기 위해 지배력을 확대하려는 연방정부와 자치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각 주정부 간의 긴장이 유지되고 있다.
이민법은 연방정부의 영역이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는 노사관계에 대한 관할권(Jurisdiction)은 캘리포니아 주의 고유권한이고, 연방정부가 간섭할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연방 이민법상 불법체류자이더라도 캘리포니아에서 고용관계에 바탕해 일을 하게 되면, 여전히 캘리포니아 주 노동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체류신분을 제대로 유지하거나 획득하지 못한 종업원들이 추후 연방정부의 이민법에 걸려 어떤 대가를 치르는 것은, 고용주가 자신의 종업원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온전히 별개의 문제다.
물론 대다수의 고용주를 상대로 한 클레임이 그러하듯 고용주 입장에서 충분히 억울한 경우인데도 그냥 손 놓고 당하고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종업원이 고용주를 공격하고 들어온다면, 결과론적으로 고용주에게 불리한 캘리포니아 주 노동법 하에서 고용주도 할 수 있는 대응을 다 해야 한다. 다만, 종업원이 체류신분 때문에 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리라는 것은 틀린 생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 봇짐 내놓으라 한다”는 식으로 고용주를 감정적으로 격앙시킬 상황도 있을 것이다.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의 사연을 듣고 무리해서 일자리를 만들어 직장을 제공해 준 고용주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필요에 의해 체류신분이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고용했다면, 이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직원을 쓰면서 책임은 결국 지지 않으려는 ‘얌체발상’인 셈이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 이민 온 연차, 미국 내에서의 경험 등에 따라 불법체류자에 대한 입장은 제각기일 것이며, 이들이 미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도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종업원을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 없을 땐 헌신짝 버리듯이 하는 마인드를 갖고 접근한다면 불법체류자를 고용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종업원을 고용했어도 유사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불법체류자’란 미국의 연방 이민법 하에서 그 법을 위반한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인간의 존엄성과 다른 권리는 박탈당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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