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새내기 시절 선배기자를 따라 직장 근처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자리에 앉나마자 설렁탕이 나왔다. 고향의 명품 ‘한밭설렁탕’처럼 근사했다.
며칠 후 혼자서 다시 그 식당에 갔는데, 전혀 달랐다. 한참만에 설렁탕 아닌 ‘황우도강탕’이 나왔다. 소가 건너간 강물을 퍼다 끓인 듯한 설렁탕이었다. 선배가 사연을 듣고는 “쥐약을 줬어야지!”라고 핀잔했다.
한국엔 예나 지금이나 팁 문화가 없다. 왜 당시 사람들이 팁을 쥐약이라고 했는지 아리송하다. 아마도 서비스를 좋게 만드는 극약처방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 선배기자는 설렁탕집의 캐시어인 주인에게 계산 후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을 뿐더러 가끔 웃돈까지 얹어줬던 모양이다.
쥐약문화의 본고장인 미국에 70년대 말 연수 온 뒤에도 한동안 헷갈렸다. 아파트를 구해 자취생이 되기 전에는 아침은 시리얼, 점심은 맥도널드로 때웠다.
팁을 줄 필요가 없었다. 미국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때는 별 수 없이 팁을 냈지만 한국식당에서 먹을 때가 문제였다. 미국이긴 하지만 한국식당이므로 한국처럼 팁을 안 줘도 된다는 어깃장이 들었다.
연수생 세 명이 함께 저녁을 먹으면 다음날 내 점심값에 해당하는 금액을 팁으로 내야했다. 가난한 연수생들에겐 적지않은 지출이다. 요즘도 맥도널드에서 5.69달러짜리 ‘빅맥’ 밀(패키지)을 사먹으면 세금을 합쳐 7달러가량 내는데, 데니스같은 레스토랑에서 햄버거를 먹으면 그 두 배 가까이 낸다. 음식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긴 하지만 팁이 단단히 한 몫 한다.
팁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연간 400억달러를 식당 팁으로 지출한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요즘 미국인들은 예전보다 팁을 즐겨 준다며 식당 웨이트레스에겐 음식값의 15~20%, 바텐더에겐 잔당 1~2달러가 적정선이라고 했다. 서비스에 대한 사례라는 건 옛말이고, 안 주고 나오면 뒤통수가 부끄러운 사회적 관행 탓이라고 했다.
한 옷가게 점원이 작심하고 쓴 글이 지난 23일 모 여성단체 웹사이트에 올랐다. 자기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고객을 왕처럼 모시지만 그게 자기 본분이어서 팁을 바라지도 않고, 주는 고객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웨이트리스들이 본연의 일을 하면서 임금 외에 팁을 받는 건 억지라며 자기는 웨이트리스에게 팁을 안 줘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않는다고 썼다.
웨이트리스들만 팁을 받는 건 아니다. CNN은 호텔 벨맨이 로비에서 방까지 짐을 옮겨다 주면 가방 당 1~2달러, 방을 청소하고 침대를 정리해주는 룸 메이드엔 매일 2~5달러, 발레 주차요원에 2~5달러, 택시기사와 이발사에 요금의 15%, 미용사와 마사지사엔 20%, 구두닦이에 10~40%, 피자나 중국식당 배달원에 음식가격의 10~20%를 주도록 권고한다.
요즘은 별도 서비스가 없는 일반 소매업소도 팁 통을 카운터에 비치해놓기 일쑤다. 버스나 크루즈를 이용하는 관광여행엔 가이드팁으로 나가는 가욋돈이 적지 않다. 유럽식으로 계산서에 팁을 미리 합산하는 업소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시애틀에선 공항이 있는 시택에 이어 4월부터 최저임금이시간당 15달러로 인상돼 팁을 둘러싼 시비가 더 거세질 듯하다.
한인사회에도 팁을 가로채는 업주가 문제다. 뉴욕 한식당 ‘금강산’은 지난주 종업원 8명에 267만달러를 배상하라는 연방법원 판결을 받았다. 업주가 오버타임 임금을 주지 않았고 신용카드로 결제된 팁도 가로채 벼룩의 간을 빼먹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종업원들에게 눈치우기, 잔디 깎기, 배추 수확하기 등 식당 일과 관계없는 잡역을 시킨 ‘갑질’도 문제됐다.
웨이트리스들이 모두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 건 아니다. 업주가 이들의 팁 수입을 감안해 임금을 시간당 2.13달러까지 합법적으로 낮출 수 있다. 그래서 이들에겐 팁이 생명줄이다. 나도 이젠 팁에 비교적 후하다. 미국생활 30여년 간 쥐약문화가 몸에 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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