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누가 거기서 빠져 죽으라고 했나, 즈이들 자식들이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걸 가지고… 도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생떼를 쓰고 있을 거냐고…”광화문 광장 앞 세월호 유가족들이 쳐놓은 텐트 앞을 지나던 택시 기사 아저씨는 나지막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택시 안의 승객이었던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지만, 고작 “그래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겠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처음엔 정말 안됐다는 심정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정말 지겨워요. 1년이 다 되도록 저 야단들이니…에휴”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한 16일, 한국에서는 추모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개최되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모든 언론을 뒤덮다시피한 추모 소식들을 보면서도 정작 내 귀에는 그 때 택시 기사의 말이 아직도 어른거린다. 내가 택시에 오를 때 “어서 오세요”라고 친절히 맞아주던 그 기사 아저씨는 무던한 표정의 전형적인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얼굴이었다. 그의 말은 침묵하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민심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일까.
흔히 ‘세월호 피로감’이라고들 표현했다. 이곳 미국에서 뉴스로만 접할 때에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던 말이었다. “피로감이라니, 이제 더 이상 듣기 싫으니 입 닥치고 있으라는 말인가, 정작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에 있다 보니 ‘피로감’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았다.
내가 한국에 도착한 직후 억대 도박설로 논란을 빚었던 한 중년가수가 기자회견을 했다. 그가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기자 회견을 하던 도중 “억울하다”며 울부짖던 모습을 나는 몇 번이나 보았을까. 그날 연로하신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TV를 보던 나는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면서 그 모습을 열 번도 더 보았다.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공중파, 종편, 케이블 등 수도 없는 방송들이(다른 장면은 놓아두고) 가장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그 장면을 무한 반복해서 틀어댔다.
세월호 사고 때도 그러했다.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 참사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사고의 원인과 사후 처리를 둘러싼 석연찮은 의문점들, 한국사회의 안전 불감증, 해피아(해양 마피아)로 드러난 관료사회의 조직적 부패상 등 산적한 문제들을 차분히 풀어나가기 보다는 울부짖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기에 바빴다. 그러한 보도 형태가 1년 가까이 지속되었다면 보는 이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할 터였다.
서울에서 만난 한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요새 대한민국에서 청와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론이야. 무슨 사건이건 언론에서 안 떠들면 그 사건은 안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야. 그렇지만 한번 언론이 떠들기 시작하면, 수많은 언론들이 저마다 메아리를 치는 바람에 아무리 하찮은 사건도 결국은 나라를 들썩이게 만드는 것이야. 그러다가 어느 날 약속이나 한 듯이 잠잠해지면, 또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돼버리는 거지.”언론이 독재 권력에 의해 탄압받던 시절 언론인들은 개인적으로 수난을 겪었을지언정 시대를 이끄는 선각자로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언론이 자본의 위력에 굴복한 요즈음 기자들은 ‘기레기’로 조롱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과유불급’이라고 언론이 너무 많아진 탓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경쟁 체제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
해마다 한국에 가면 한국사회의 요동치는 모습이 피부에 와 닿는다. 정작 한국에 살고 있는 이들은 가마솥 안의 개구리처럼 그 변화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외부에서 온 나는 그 변화를 더욱 실감하게 된다. 내 사고방식이 한국을 떠나온 80년대에 고착된 탓일까, 한국엘 다녀오면 나는 머릿속의 혼란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좀 더 냉철하고 차분해진 언론 보도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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