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을 형편이 안되어 못 갖을때는 엄청 부럽다가 정작 갖게 되면 애물단지가 되는 것 세 가지는 별장과 보트, 그리고 숨겨논 애인이란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내 스튜디오가 꼭 그런 꼴이었다. 고맙고 황감했고 덕분에 그림을 그릴 수 있기는 했지만 스튜디오에 가려고 나서는 날은 아침부터 밭에 물주는 일부터 저녁밥 걱정까지 미리 해놓고 가느라 맘도 몸도 부산했고 안가는 날은 숙제 안한 것 같은 죄책감에, 어린애를 내동댕이치고 온 어미처럼 텅 빈 스튜디오가 맘에 쓰여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드디어 스튜디오를 접고 나니 날아갈 것 같다. 이젠 무얼 하겠다는 욕심도 버리고알차게 살겠다는 야무진 결심도 버리고 천천히, 널널하게 살자 했다. 오랜동안 주위에 있었어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눈에 띄며 일부러 챙기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 사람에 대한 많은 정보가 귀에 들리는 때가 있다. 책이나 어떤 문화, 혹은 역사같은 것도 마찬가지 같다. 최근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쓴 돈황이란 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새삼스레 실크로드에 대한 호기심이 솟았는데 널널하게 살기로 하자 곧장 내 손에 들어온 게 15장 짜리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다.
영어로 된 것을 한국말로 더빙한 모양으로 사막 저 멀리서 들려오는 피리소리처럼 처량한 음악이 마치 새벽잠 깨우는 새마을운동 노래의 생뚱거림처럼 왕왕거려 정작 내레이터의 말소리는 귀를 바짝 세우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 집중해 봐야 한다. 답사팀이 가는 행적이란 게 새 한마리,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고비 사막, 천산산맥이고 낙타등에 매달려 터덜터덜 흔들리며 가는 일이 대부분인데 어디서 스팩타클하고 흥미진진한 사건이 있을소냐. 그런데도 한번 필이 꽃히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인다고 그 느리게 반복되는 여정을 찍은 다큐가 꽤 재미 있었다. 탐사팀들은 낙타를 타다가도 짚차며 기차를 타는 데도 쉽지 않아 보이는데 오로지 낙타만을 의지해 몇 달을 걸쳐 사막을 건너는 그 험한길을 그 옛날에 어찌 다녔을까? 사막 건너 물건을 교환할 색다른 문명이 있는 걸 어찌 알았을까? 그게 누구건 제일 처음 그 길을 간 사람은 누구일까? 얼마 전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영어가 통하는 게 어찌나 편하던지 엔간해서는 유럽쪽으로 눈 돌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거래와 흥정을 했을까? 정말 인간은 대단하다. 정말 신기하고 정말 존경스럽다. 탐사팀은 통역도 데리고 다니고 낙타를 탔다가 트럭도 타고 설치된지 얼마 안됐다는 기차에 타서는 테이블보 깔린 식당차에서 햄버거를 먹기도 하는데도 여정이 고달프단다. 허허벌판을 가다 느닷없이 한무더기의 폐허가 나타나고 다시 하염없이 황무지를 더듬어 가면 다시 한무더기의 폐허가 나타난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스마트폰 들고 쩔쩔매는, 한결같이 무식하게 보일 노인들도 그들의 젊은 시절엔 후세의 범인들이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패기와 지식을 갖고 열렬히 살아왔다. 역사를 읽다보면 현대를 이토록 발전시킨 선조들에 대해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보여지는 인간 삶의 신비로움. 실크로드를 따라 인도까지 가서 불교와 불경을 들여온 현장법사 덕분에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는 불교가 성했지만 정작 종주국인 인도엔 힌두교가 성하다.
예수님도 태어난 고장에선 지지를 못받는다는 말은 이 경우에도 통하나 보다. 폐허에도 꽃피우는 인류문명은 그러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세월 속에 사그라져 먼지되어 날린다. 우리네 삶, 너와 나의 잘나고 못남을 가르며 기고만장하기도 하고 아니꼬우면서도 설설 기기도 하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참으로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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