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얼마 전, 자연사박물관에서 ‘작은 거인(Tiny Giants)’이라는 3D 영화를 보았다. 작으면 소인이지, 어찌 거인이라 하는 지, 이 앞뒤가 안맞는 제목의 영화는 야생 나무에 사는 줄무늬 다람쥐와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 높이 뛸 수 있는 쥐의 삶을 다루었다.
고작 아이의 주먹 크기만한 작은 동물들에게 계곡의 물은 홍수가 되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파묻히기 십상, 바람과 눈 같은 계절 변화와 올빼미 등의 포식동물은 그들에게 버거운 삶의 존재들이다.
노란 눈을 흡뜨고 달려드는 올빼미나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채 다가드는 뱀을 피해 결사적으로 도망가는 이 둘은 결코 잡아먹히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가 어린이들이 보는 가족용이다 보니 잡아먹히는 잔인한 장면을 피해갔을 뿐, 수시로 큰 동물의 먹이가 될 것이다.
줄무늬 다람쥐는 도토리를 있는 대로 입안에 집어넣어 볼 양쪽, 턱밑까지 볼록해지는데 겨울철 양식으로 땅속 깊이 저장한다. 높이뛰기 선수 쥐는 무시무시한 독수리한테 쫓겨 도망치다가 사막에 버려진 야생동물의 육탈된 머리뼈 속으로 숨어든다.
마치 미국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자주 그린 뉴멕시코 사막의 머리뼈 같은 이곳에서 쥐는 천지가 진동하는 죽음의 공포에 맞선다. 독수리는 머리뼈를 집어던지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팍팍 치는데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는 공포 속에서도 이 미물은 결코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 좁은 뼈 구멍으로 숨어들어 살아남는다.
양식과 자리다툼을 놓고 라이벌과 거대한 육식동물에 맞서 나가며 결국 자신의 우주를 지배해 나가는 이 작은 동물들의 수퍼 파워는 3D 입체안경을 쓴 거대란 동물 인간들에게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에 온 느낌을 준다. 이 영화처럼 내 키가 1피트 아래에 있을 때, 눈높이를 바짝 낮추면, 포복 자세로 납작 엎드리면, 세상이 너무나 달라진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주인공 걸리버가 항해 중 난파하여 소인국 해변에서 눈을 떠보니 온몸이 결박되어 있고 몸 위에는 개미보다 조금 큰 소인들이 잔뜩 올라가 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걸리버는 6인치 밖에 안되는 소인들이 사는 소인국과 60피트가 넘는 거인들이 사는 대인국, 하늘을 나는 섬나라, 말 나라 등을 표류하며 기이한 체험을 하는데 이 소설은 말한다. “긍지가 높다든가 자존심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자칫하면 허영에 불과하다‘며 인간 본성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어린아이와 놀다가 공이 소파 밑으로 들어갔을 때 마루바닥에 엎드려 팔을 소파 밑으로 들이밀다 보면 아이의 눈높이로 거실의 모든 사물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아이의 눈높이로 보면 모든 사물들이 엄청 높고 커 보인다. 소파도 식탁도 어찌나 높은 지, 장식장 책꽂이는 까마득하니 높다. 서있을 때나 의자에 앉아있을 때는 모르던 높이가 얼마나 높게 느껴지는 지, 사물을 보는 기준이, 시선이 달라진다.
힘 있고 가진 것이 많고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보자.한 단체의 리더나 회사의 대표나 상사, 가게의 사장이 조금씩 눈높이를 낮추면 단체 회원들, 직장인이나 아랫사람, 종업원들과의 소통이 쉬워진다. 재산이나 힘을 자랑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리더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존경받고 사랑받는다.
최대한 몸을 낮춰 상대방을 대하면 안될 일도 된다. 눈높이를 한 단계 낮추면 안보이던 것이 보이고 훨씬 세상 살기도 편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평가 기준, 상대에 대해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늘 눈높이를 높게 하여 살고자 아등바등 한 것은 아닌지, 작은 동물들의 눈높이로 보게 된 영화 한편이 눈높이 낮추는 마음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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